전체메뉴
노년을 잘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송 민 석
전 여천고등학교장
2015년 01월 21일(수) 00:00
새해 첫날의 설렘이 클수록 젊음이고, 아쉬움이 클수록 나이 듦의 징표라 한다. 나이 들어 해가 바뀔 때마다 세월을 역류하고 싶은 열망이 강렬해지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이웃집 할아버지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르던 기억이 새롭다. 초가지붕 밑에서 병풍을 두르고 긴 수염에 갓을 쓴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올망졸망 손자 손녀들과 일가친척이 모여 읍내 사진관에서 달려온 사진기사가 검은 보자기 속을 들여다보며 가족사진을 찍던 것이 50년대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96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52세였다. 그러던 것이 2013년에는 81.9세가 되었다. 요즘은 매년 0.5세씩 올라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면 앞으로 90세, 100세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요즘은 회갑은커녕 칠순잔치도 보기 힘들다.

지난 연말에 연거푸 영화 두 편을 보았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와 ‘국제시장’이다. 주인공들의 모습에 공감하며 아내와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특히 월남전에 참전한 필자로서는 어렵게 ‘보릿고개’를 넘기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오버랩 되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온갖 역경을 이겨낸 아버지 세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월남전에 참전하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산업사회 건설의 견인차로 젊은 정열을 쏟았던 그 시절의 청년 주역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쓸쓸히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근대적인 정년제도가 등장한 것은 독일의 비스마르크 시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정년제가 등장했다. 노인의 기준을 65세로 정한 19세기 후반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50세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기라고 한다. 당시의 65세는 오늘날 약 90세에 해당한다니 현재의 노인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공직에서 갓 정년을 맞이한 후배에게 정년 후의 계획을 물었더니 별 계획이 없다면서 이제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인생의 한평생을 90년이라 한다면 3분의 1이 노년인 셈이다. 나이 60이면 앞으로 30년이나 남은 인생을 쉬면서 보내겠다는 건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는가. 이런 인생이 과연 보람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 주변에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내년부터 기업체 정년이 60세로 늘어나게 되자 대기업에서조차 비상조치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50대 조기 퇴직자들까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초고령사회의 도래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은 ‘이모작 인생’을 준비하라고 강조한다. 전반부 인생의 소출에 기대어 후반부 인생을 엉거주춤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후대비 패러다임을 바꿔 새로운 출발선에서 인생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권한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 어떤 열매를 거두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과 준비에 달려 있다.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노년을 잘살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자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준비하는 자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에서 ‘왜 위인들의 초상화는 대부분 노년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정신이 원숙해지고 지식이 완숙해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이며 이 시기의 얼굴은 꽃보다 아름다운 시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젊은이가 어떤 95세의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70살이 되었을 때 25년이나 더 살게 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라네.” 요즘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