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200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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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00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강 용 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2014년 11월 03일(월) 00:00
지난 11월 1일은 세월호 참사 200일째 날입니다. 아직 9명 실종자와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0일을 맞아 팽목항에는 5m 높이의 노란 리본이 세워졌습니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 상주모임’이 만든 것이지요. 그 노란 리본 앞에서 유족들과 300여 시민들이 모여 ‘기억을 새기다’는 이름의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는 그날까지 전진할 테니 너희는 꿈에라도 찾아와서 너희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전명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장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마음의 슬픔이 너무 크지만 이제는 힘을 내서 4월 16일의 참혹함, 정부의 재난안전시스템 부재를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살아남은 학생은 세월호 재판 증인으로 나와 “선원들의 처벌보다 왜 친구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유족이나 생존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입니다. 세월호는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나?’, ‘국가는 뭘 하고 있었나?’ ‘세모 그룹 유병언과 관피아들은 어떤 관계였나?’ 그 진실을 알지 않고는 4월 16일로부터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익히 알듯 천진해운과 관피아가 일으킨 사고에, 승객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력이 겹친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도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은 가해자가 있는 정신 질환입니다. 이 말은 가해자에 대한 정의의 실현이 치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진상 규명에 입각해서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받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는 것, 바로 거기에서 우리 사회는 비로소 4월 16일로부터 한 발짝씩 치유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가라앉아 버린 대한민국을 버티도록 한 힘, 유가족들과 상처 입은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운 힘은 “잊지 않을게”라는 다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그저 큰 ‘교통사고’에 불과한 것으로 기억시키려는 자들과 싸우고 있는”(세월호 추모집회 선언문) 중입니다. 세월호 참사 같은 트라우마는 참사 그 자체인 일차적 외상만이 아니라 이후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잊지말고 기억합시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 ‘기억할 의무’는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 사회와 시민들이 져야할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는 기억, 그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대의식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타인이 헤아려 주는 순간, 비로소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누가 내 속을 알아주겠어요?” 바로 그 속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눈물은 멈추는 것입니다.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은 바로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이들에게 내미는 손, 위로입니다.

한편, 잊지 말자는 것은 잊으라고 하는 것, 잊히기를 바라는 것에 대한 가장 인간다운 저항입니다. 가해자에 가까울수록 진실을 감추고 덮으려 합니다. 국가가 직간접으로 가해의 주체가 될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감추는 것은 물론이고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반정부 운운하며 억압하고 고립시킵니다. 가해자나 국가의 망각과 지우기에 맞서 기억을 현재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잊지 않았던 사람들,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실은 힘을 얻었다는 것을, 그로 인해 역사가 바뀌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메고 900km 도보순례를 한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다 함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시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질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겁니다.

세월호 참사 200일, 시 한편을 떠올립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 할리우드로 망명하여 ‘살아남은’ 브레히트가 쓴 시입니다. 역시 나치에 쫓기다가 스페인 국경 근처 피렌체 산맥에서 자살한 친구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 썼다고 합니다. 진실을 기억하는 일과 동시대인의 책임을 떠올립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막지 못한 책임만 아니라, 그 불행의 결과를 오랫동안 계속되도록 한 책임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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