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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가장 뜨거운 눈물로, 이열치열 여름나기
2014년 08월 26일(화) 00:00
스무 살. 이십대로 보내는 첫 해가 특별하기만을 바랐고 세상을 위해, 타인을 위해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 기회가 다가왔다. 나로 인해, 나의 작은 손길로 인해 나와 피부색이 다른, 나와 피가 다른 어떤 이가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던,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내가 스무 살로 보냈던 매 순간은 경험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이십 대로서의 첫 시작이었기에 간절하고 치열하게 보내고 싶었다. 끊임없이 도전했고 지금의 내 앞에 놓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외 봉사라는 기회를 얻었고, 그로 인해 내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2013년 7월 여름. 가장 뜨거웠던 순간,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비로소 내 자신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 인도네시아에서의 2주는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벽돌 한 장, 흙 한 삽의 무게 또한 그리 가볍지 않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또한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내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

자카르타에서 두 시간 가량을 달려 간 마을에서는 이미 그곳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집짓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지켜야 할 규율 정도만 간단히 숙지 받은 채 여섯 번째 집의 봉사자로 배정되었다. 그야말로 맨땅으로부터 지어질 우리의 ‘여섯 번째 집’과 그 집에서 살게 될 ‘홈 파트너’와의 2주간의 동고동락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집을 짓는 것은 물론, 한국을 처음 접하는 그곳의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의 문화로써 그들에게 선보이기로 한 것은 부채춤이었다. 부채춤의 ‘부’자도 모르는 스무 명의 팀원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주간의 일과는 매일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현장으로 이동해서 해가 질 무렵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와 다시 문화 공연을 연습했다. 완벽한 공연을 보여 주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자정이 지나 동 틀 무렵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몸과 마음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힘든 내 자신만 보였다. 왜 여기 이곳에 서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잠깐의 휴식을 위해,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고자 숨어 들어간 나무 그늘 아래서 비로소 내가 밟고 있는 이 땅과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우리를 볼 수 있었다. 흐르는 땀 한 방울, 정겨운 웃음, 소박한 나눔 그리고 잠깐의 휴식과 같은 모든 것의 가치가 서로 교차하는 ‘따뜻함’속이었다.

더 이상 나의 가치를 묻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시간이 아닌, 그 순간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인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쌓은 벽돌은 단단한 벽이 되었고, 고르게 다진 흙은 바닥이 되었고, 두려움은 진심 어린 따뜻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하나 둘, 하나 둘을 연신 외치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그곳의 저소득층 주민을 위한 주택을 건립할 수 있었다. 남모르게 훔쳤던 눈물과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나와 네가 아닌 ‘우리’였기에 의지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봉사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발견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발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라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이웃’이라는 말은 너무도 어색하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나에게 주어진 그 길만을 달려가기에 더 갑박하고 어려운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더 간절히 바란다. 올 여름이, 나와 이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되기를. 가까운 나의 이웃과 함께 나눔의 가치를 넘어 우리 삶을 돌아보며 가장 뜨거운 땀과 눈물로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