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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진정한 사랑을∼
박 행 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2013년 03월 13일(수) 00:00
‘황혼’에는 자연의 황혼과 인생의 황혼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1.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2.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따위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이육사의 ‘황혼’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오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그가 노래하는 것은 인생의 황혼이다. 비록 한창 고비를 지났지만 아직도 정성된 마음으로 맞아들일 대상이 남아있다. 황혼이 곧 종말이라는 부정적인 관념, 특히 외로움으로 대표되는 골방의 커튼을 걷고 인생을 다시 보아야 한다.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삶이라는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

딱히 몇 살부터를 황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 황혼기에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뜻에서 생겨난 말일 것 같다. 이 황혼기가 머지않아 거의 30년 기간이 될 것인데 “이처럼 긴 시간들을 어떻게 아름답고 의욕적으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다.

결혼식의 축가로 자주 불리는 정두영 작곡의 ‘사랑은 언제나’는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에 곡을 붙인 것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내일을 향한 소망,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베풀며 따뜻하게 보듬는 사랑이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며 특히 황혼기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다.

로버트 월리가 쓴 ‘Seniors in Love’는 황혼기의 독신자들에게 성숙한 사랑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준다. 저자는 황혼은 얼어붙은 추운 겨울이 아니고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라고 말한다. 이 귀한 시기를 체념하고 패배자처럼 살지 말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풍성하게 살라고 권한다. 사랑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며 황혼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가장 필요한 때임을 일깨워준다.

그는 황혼기에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저울질하며 계산하지 말며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따라서 상대방이나 자신을 희생하지도 말라고 한다. 단순한 여생의 동반자로 만족하지 말고 영적 여정에 서로에게 의지하고 격려하며 상대의 능력을 북돋아주면서 함께 일하는 동지가 되라고 조언한다.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황혼결혼을 할 경우, 기대와 달리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행복한 황혼결혼의 조건은 절대 사랑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다. 자신의 행복보다 상대의 행복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책임이 아니라 특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황혼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자녀들이다. 많건 적건 각자의 재산문제가 개입되어 있고, 새로운 부모 의료비를 포함한 노후를 떠맡아야 할까봐 걱정도 된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를 뺏기는 것 같아서 괜히 사귀는 대상이 탐탁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자녀들은 결국 부모의 행복을 위하여 대부분 수용하게 마련이다.

얼마 전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본 ‘호프 스프링즈’는 메릴 스트립이 주연하는 황혼 부부의 이야기이다. 결혼 30년차 부부의 두 형태의 삶, 각방을 쓰며 덤덤하다 못해 따분하게 사는 전반부 삶과 사랑을 회복하고 행복해 하는 후반부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달 말경 개봉될 예정이다.

청춘의 사랑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라면 황혼의 사랑은 화롯불같이 불씨를 품고 안으로 타오르는 열정이다. 황혼의 진지한 사랑을 이해하고 축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