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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울리는 ‘원산지 표시’
송 민 석
2012년 12월 05일(수) 00:00
지난 4월부터 탈북 여성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40대 초반의 그녀는 북쪽 이야기만 나오면 눈가가 붉어진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은 더욱 편치 않는 표정이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 때문이리라. 지난여름 통일현장체험 때 제3땅굴 옆 도라전망대에 올라 개성공단을 바라보며 개성에서 조금만 더 가면 고향이라면서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저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울먹이던 그녀다.

현재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2만 50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70%가 여성이고, 대부분이 젊은 세대들이다. 그 중 광주·전남 거주자는 1000여 명으로 여수와 순천에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한 때 ‘새터민’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던 탈북자에 대한 공식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새터민’이란 ‘탈북자’를 대체하기 위한 공모에 당선된 용어이나 탈북자 내부의 반발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도 아니고 천신만고 끝에 찾아 온 내 조국인데 ‘새터민’이라는 말이 거슬릴 법도 하다.

지난달 탈북자 55명을 초청하여 ‘북한이탈주민과의 대화한마당’ 행사를 가졌다. 그들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려 오후 6시에 극장에서 치른 행사였다. 필자는 인사말을 통해 “북한 정권에 대한 소리 없는 반항이 탈북이라고 본다. 여러분은 먼저 온 통일세대로서 통일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며, 통일 이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는 눈을 갖도록 노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탈북자들이 적응 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은 우리 사회의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보통 사람이 가족을 버리고 사선을 넘어왔겠느냐?” “어려서부터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받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주노동자들보다 못한 ‘3등 시민’이라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탈북자 중 일부는 자신이 탈북자임을 밝히기를 꺼려 조선족으로 행세하기도 한다.

그들은 명령과 복종의 집단주의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해 다소간의 ‘다름’이 있을 뿐, 함께 나아가야 할 소중한 파트너가 아닌가. 요즘의 화두인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싶다면 종교나 각종 사회단체들이 앞장서 탈북자나 탈북 학생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결연을 맺고 멘토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능력이 없다면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두고 온 북녘 가족 걱정과 남한 정착을 위한 삶의 몸부림, 인맥과 재산도 없는 조건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그들이 안고 있는 스트레스를 덜어주는데 우리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들이 남한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고, 우리 사회를 신뢰하도록 만드는 일은 곧 북한 정권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며, 나아가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대화 한마당 행사에서 영화 ‘광해’를 관람하고 나오던 나이 지긋한 60대 후반의 탈북 남성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늘 본 영화처럼 북녘 땅에서도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져 남북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가슴 아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따라 “지금은 북한산, 통일되면 국산”이라는 임희구가 쓴 ‘원산지 표시’라는 짤막한 시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통일부 전남지역 통일교육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