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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점에서
2011년 02월 23일(수) 00:00
며칠 사이에 살짝 다가온 봄기운이 폭설과 혹한으로 얼룩진 겨울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응당 꽃샘 추위도 찾아오겠지만 매화가 피고 산수유 꽃망울이 터질 것이며, 세간의 우울한 소식도 희망의 싹이 주는 생명력에 가려질 것이다.

봄은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졸업을 거쳐 상급학교로 또는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고, 입시 전쟁 속에서도 소중한 꿈을 위한 주도적 역량을 키우는 때가 청춘의 봄이다. 이때의 우리 아이들에게 ‘몸이 아니라 머리로 일하라(smarter than harder)!’고 일러주고 싶다. 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창의적인 사고로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부와 빈곤이 대물림되고, 가난이 꿈조차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작년 가을 권영길 의원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학생의 꿈도 서열화되고 있었다. 부자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이른바 사회 주류층을 형성하는 직업을 희망하는 데 반해, 가난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주로 안정된 직업을 찾고 있었다.

물론 출세의 잣대가 되는 특정 직업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유층의 자녀들이 희망 직업에 대해 구체적 자기 설계 계획을 갖고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희망조차도 막연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롤 모델(Role model)의 부재, 사회·경제적 경험 및 교육 요인,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유 등에 의해 꿈조차 부모의 경제력에 발목 잡힌다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10여년 전에 이미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의 자녀 교육법’에서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기를 쓰고 애쓰면 쉰다섯에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가고 없다”고 단언했다. 산업 사회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서 평생토록 일하는 게 미덕이었다. 그러나 현대 정보사회에서는 평생 직업이란 없으며, 따라서 누구나 새로운 경력에 도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재교육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돈벌이와 출세의 공식에 의거한 형식과 스펙에 집착하는 것은 나심 탈레브의 지적처럼 ‘자신의 희망을 사고의 근거로 삼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 백조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에게 구글의 신화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자신의 재능과 개성, 장점을 하루빨리 발견해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비전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미 학벌이나 천편일률적인 스펙보다는 조금 점수가 뒤지더라도 자신만의 확실한 장기를 가진 인재를 선발하는 움직임이 기업에서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10년 뒤를 예상하며 현재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절망과 두려움을 떨친 끝에 새 치즈를 구한 꼬마인간 허의 결론은 단호하다. “변화를 예측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그 어떤 기득권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

/김창균 광주북성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