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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칼럼] 이웃에게 전화를
2008년 03월 17일(월) 19:16
벨이 두 번 울리면 호흡을 가다듬고 수화기를 든다. ‘생명의 전화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냥 내려놓는다.
벨이 또 울린다 긴장하면서 수화기를 귀에 댄다. ‘상담하는 곳이죠” “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침묵 속에 또다시 전화를 끊는다.
벨 소리에 민감한 전화상담 특성상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해야하는 상담자로서는 침묵의 전화가 겁이 난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들어 줄 사람이 없어 생면부지의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고도 입을 열지 못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벨 소리가 울리지만 상담원과 연결된 통화는 수 건에 불과하다. 친구와 이웃이 필요한 순간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 답답함은 어떠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자꾸만 병들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이처럼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세계화, 속도화, 물질만능주의, 능률위주, 실용주의 등에 빠져 산다.
특히 고독과 소외감이 난무하며 경제와 문화가 발달할수록 양극화는 극에 달해 누구나 싶게 친구나 이웃이 되기가 더욱 어렵다. 지난해 생명의 전화 통계에 따르면 정신건강항목 전화상담 건수는 1천105건으로 우울증 등 26%, 불안 22%에 달한다. 최근 상담 내용으로는 주부 우울증과 남편의 경제적 무능, 게임 중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혼자 외로움에 지쳐 병들어 가고 있지만 이를 달래줄 이는 없다.
이를 견줘 볼 때 생명의 전화 상담원들은 이들에게 진정한 벗이라 자부한다. 전화상담의 장점은 언제든지 피 상담자가 원할 때 곧 바로 상담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심리적인 이동성을 가져온다. 자기 노출, 감정의 상처에서 자유롭고 편안함을 가져다주며 익명성도 보장된다.
하지만, 피 상담자가 상담원을 신뢰하지 않고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는 것은 도움의 손길을 놓는 것과 같아 안타깝다. 평소 훈련을 통해 성숙한 상담원으로 거듭나야하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벨이 다시 울린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선생님 죽고 싶어요” “무슨 일이 그렇게 힘들게 하셨나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어요. 밥도 먹기 싫어요”
상담 과정에서 그가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병원을 자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그가 자주 아프다며 호소하는 것을 보고 짜증을 낸단다. 상담을 통해 그를 달랜다. 상담 후 그의 목소리가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우울증 자살자 수가 35명에 달한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 중 20∼30%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져보자. 느림의 미학을 생활 속에 담아 주변의 수다에도 귀 기울여 듣는 ‘관심’이야말로 그 어떤 치료보다 훌륭한 치료법이 될 것이다.
장 식〈생명의전화 광주지부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