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임성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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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임성용 지음
2026년 01월 16일(금) 19:20
“빨리 삼키. 살라마 버티. 움직이지 마.”

기석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지만, 여전히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살아간다. 고문 후유증으로 기석은 동네 담벼락의 모든 틈을 시멘트로 메운다. 그 틈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존재가 다시 기어 나올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당시 그를 고문했던 이는 ‘재마이 행님’이었다. 죽도록 몽둥이로 때리다가도, 정신을 잃어가던 기석의 입에 사탕 두 알을 몰래 넣어준 ‘다정한 이웃’.

임성용 소설가의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은 평범한 일상 아래 숨겨진 구조적 폭력과 파편화된 개인을 비춘 작품이다.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노인부터 학교 폭력으로 세상을 등진 학생,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는 부모까지. 우리가 곁에 두고도 외면했던 이웃들의 ‘진짜 얼굴’을 복원한다.

표제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과 연작 ‘두더지’는 군사독재 시절의 폭력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석이 담벼락의 틈을 메우는 행위는 끝나지 않은 폭력의 흔적을 상징한다.

‘쥐가 있다’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속에서 혐오와 공포가 어떤 방식으로 약자를 향해 옮겨붙는지를 포착했다. 보이지 않는 위협은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표식이 되고, 불안은 배제의 언어로 표출된다. ‘안녕 미미시스터즈’는 학교 폭력 피해자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폭력이 한 사람의 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책은 절망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토종 씨 우보 씨’에서 우보는 혈통과 순수를 따지는 세태 속에서도 “키우는 사람이 잘 들여다보고 정성을 들이면 된다”고 말한다. 출신이나 과거보다 지금 여기에서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걷는사람·1만7000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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