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마을의 역사를 그리다…주민의 손으로
12개 마을 주민 498명 이야기 담긴 책 펴낸 해남 농어촌 협약지원센터
83세 어르신부터 젊은 주민까지…얼굴·풍경·삶 등 그림에 담아내
‘천년의 가치가 머무는 마을’ 책·지도 제작…마을유산 기록화 시도
83세 어르신부터 젊은 주민까지…얼굴·풍경·삶 등 그림에 담아내
‘천년의 가치가 머무는 마을’ 책·지도 제작…마을유산 기록화 시도
![]() 금강마을 주민들이 마을지도에 사용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해남 농어촌 협약지원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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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서로의 일손을 도왔던 논밭, 마르지 않던 우물, 뛰어노는 아이들로 가득했던 골목길까지. 느티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는 동안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마을의 역사는 기억하는 이가 사라지면 마치 없었던 일이 된다.
분명 일어났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는 무수한 마을들의 희로애락을 기억하기 위해 해남군 농어촌 협약지원센터가 나섰다.
제작에 함께한 함진숙 센터장은 시골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고향은 우리에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죠. 그리운 순간에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마을 그림책과 지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각 마을의 자연, 문화, 소득경제 등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했어요.”
주민의 다수는 어르신이었다. 그림 작업을 처음 해보는 어르신들의 작품에는 소박하지만 순수한 영혼이 담겨있었다.
“마을 책 만들기에 참여한 박동례 할머니는 83세에 물감을 처음 사용해 보셨어요. 처음에는 어려워하셨지만 망쳐도 된다고 안심시켜드리고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니 먹자욱이 근사한 수채화가 완성됐죠. 또 다른 어르신은 손끝을 덜덜 떨며 어렵게 사람의 형태를 그리고 난 뒤 “우리 엄니 그렸다“라며 눈시울을 붉혀 다 같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어요. 배추, 고구마 등이 모두 다른 형태로 그려져서 사람에 따라 자원의 쓰임도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관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년에 3~4모작 농사를 진행하고, 바닷마을은 어로작업까지 이뤄져 교육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어렵게 완성된 지도와 책을 보고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책과 지도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지난 24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5년 땅끝 천년의 마을 콘테스트’를 통해 관람객들과 만났다. 주민 각자의 그림들은 마을지도에 담겨 각 마을홍보관에 전시됐다.
함진숙 센터장은 “여력이 된다면 515개 해남의 모든 마을 이야기를 지도에 담아서 마을유산을 재조명하고 기록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다”며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마을 아카이브를 만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