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본향, K-컬처 최후의 보루 - 김은영 전남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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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본향, K-컬처 최후의 보루 - 김은영 전남문화재단 대표이사
2025년 10월 24일(금) 00:20
최근 한국문화가 전 세계를 홀리고 있다. 이른바 K-컬처(culture)의 K홀릭(holic)이다. 한국 영화, 드라마, K팝 음악, 음식, 패션, 게임, 화장품, 문학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로운 글로벌 문화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옥스퍼드 사전에는 한국어 단어의 등재 양이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지는가 하면 해외 언론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전 세계적 성공의 이유에 대해 앞 다투어 분석 기사를 다루고 있을 정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길 원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한국문화사에 언제 이런 날이 올 것을 상상이나 했던가. 새삼 문명과 역서에서 처음의 상태를 잃어버리고 근본에서 멀어져가다가 결국 처음 시작한 때의 근본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이상적인 상태가 회복된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의미가 떠오른다. 그동안 우리들 모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우리의 의식주뿐 아니라 문화예술에서도 한동안 서구의 앞선 성취와 스타일을 흉내내고 따라가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한동안 한국문화의 여러 부문에서 ‘반본(返本)’의 방향으로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우리 전통회화인 수묵은 퇴락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나라 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관련 한국화가 빛을 잃으며 매력을 잃어가고 있고 폐과되거나 지원자나 전공자 수도 줄면서 크나큰 위기 앞에 서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 것처럼 이번엔 어쩌면 우리의 자연적인 풍토와 인간적인 정서, 정신문화가 그림 속에 깊이 배어있는 우리 전통회화인 수묵이 다시 각광받게 되는 차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K-컬처의 최후 보루는 수묵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가운데 미술 부문은 아직 펼쳐야 할 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K-아트가 설 자리는 이미 굳건하게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양미술이나 현대미술로서 보다는 수묵이야말로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는 고유한 한국화의 정체성이 특별한 자산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로지 먹 하나로 흑과 백 사이의 수없이 많은 감성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현묘한 수묵화의 정신성을 담아낼 뿐 아니라 이제 수묵은 동시대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확장하려는 의지가 쉼 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열리고 있는 2025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특별하다. ‘문명의 이웃들’을 주제로 한 이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전통 수묵화가 재료나 형식에 따라 변신하거나 수묵의 현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 특히 미술관 전시로는 힘든 수묵 대작들을 통해 동아시아 수묵문화를 보편적인 문화로 발전시켜 K-아트의 선봉장 역할을 하겠다는 윤재갑 총감독의 ‘수묵의 진수, 수묵의 바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이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지필묵에 기반한 전통적 수묵에 국한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수묵의 철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게 하는 ‘디지털 산수’ 등 관람자와 다양하게 소통하는 방식도 큰 울림을 준다.

짧은 가을과 함께 오는 31일이면 폐막하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남의 세 곳 어느 곳을 먼저 관람해도 좋지만 321년 만에 진본이 공개된 공재 윤두서의 ‘세마도’ 등 해남에서 수묵의 뿌리를 만나고 수묵의 확장이 펼쳐지는 진도를 지나 국내외 수묵작가들의 실험장이라 할 목포에서 관람을 마치는 여정이 역시 자연스럽다.

며칠 전, 역으로 목포 진도 해남 순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과 올해 수묵비엔날레의 킬러 콘텐츠라 할 ‘세마도’를 오래 들여다보고 돌아오는 길, 문득 18세기 가장 혁신적인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이 시대에 태어나 활동했다면 어떤 작업에 매진했을까 상상해보았다. 어쩌면 인공지능, 증강 가상현실 등 가장 최첨단의 기술을 통해 아주 먼 미래까지 앞서갈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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