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창작환경, 광주에서부터 바꿔야 - 김영 광주여성가족재단 정책개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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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창작환경, 광주에서부터 바꿔야 - 김영 광주여성가족재단 정책개발실장
2025년 08월 22일(금) 00:00
예술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것은 예술노동자의 땀과 눈물로 빚어진 결과물이며 대중의 감상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예술이 예술인의 노동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예술인의 노동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노동이 그렇듯 예술계 역시 열정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구조 속에서 성별과 연령에 따른 차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연극계 미투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예술계의 불공정과 차별을 직시하게 되었고 개선을 위한 법적 제도 마련과 예술인 지원이 시작됐다. 광주시는 2024년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를 제정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추진한 ‘광주지역 공연예술계 성평등 창작환경 조성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 예술인들은 비공식적 네트워크로 인한 기회의 부족, 임금 격차, 의사결정 구조의 남성 편중, 성희롱·성폭력 등 다양한 불공정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도시 광주의 위상에 걸맞은 공연예술 창작환경을 위해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개선 방안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 예술인의 숫자는 많지만 기회는 적다. 광주 공연예술계 등록 예술인 중 여성의 비율은 57.3%에 달한다. 그러나 주요 예술단체의 단장, 연출, 예술감독 등 요직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활동 인구에 비해 여성의 리더십 포지션은 현저히 부족한 셈이다.

이는 학연·지연 등 남성 중심의 비공식 네트워크에서의 일감 주기, 창작 과정에서의 여성 의견 배제 등 성별화된 권력구조가 여성 예술인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다양한 예술 작품의 발굴과 지원, 창작 초기 단계부터 성평등 관점을 반영한 구성, 젠더리스 작품과 역할 개발 등을 통해 여성의 기획·연출·배역 기회와 리더십 확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임금 격차와 불공정한 보상은 투명성 강화가 해법이다. 조사에 따르면 공연예술계 여성 예술인의 표준계약서 작성·교부 경험은 약 34%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개런티 고지나 성과 보상이 구두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여성 예술인이 남성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의견도 56%에 달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직무·직능군별 성별 임금 공시, 공정한 보상 체계 가이드라인 마련, 임금 협상력 교육 등을 통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아울러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불공정과 차별이 발생할 경우 제재하는 제도적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피해자 및 증인의 보호와 실효성 있는 제재가 관건이다. 성희롱·성폭력은 공연예술계의 오래된 문제다. 피해자와 증인을 보호할 수 있는 익명 신고 체계 구축,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 대표자·중간관리자 대상 예방교육 의무화, 단체별 행동강령 마련 및 이행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사건 발생 시 피해자 보호와 접수, 조직 문화 개선, 가해자 제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절차를 시스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예술지원기관, 인권위원회, 성폭력상담소 등과 연계한 예술인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과 현장,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에 대한 예술계 내부의 인지도도 낮고 후속 조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조례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예술계 현장과의 소통, 예술인 권리보장위원회 운영, 예술인권익지원센터 설립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성평등 자문위원제 도입, 성평등 행동수칙 마련, 계약서 내 성평등 조항 삽입, 성평등 인증제 도입 등 제도적 장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공연예술계의 성평등은 단순히 여성 예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광주시민이 창작물을 향유하며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창작의 다양성과 예술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성평등 실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광주시가 예술도시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창작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성평등 창작환경, 광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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