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되짚어 본 광주·전남 아·태전쟁 유적] 10대까지 동원해 무임금 강제 노동… 폭약으로 채굴 작업 중 다리 잃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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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 되짚어 본 광주·전남 아·태전쟁 유적] 10대까지 동원해 무임금 강제 노동… 폭약으로 채굴 작업 중 다리 잃기도
2025년 05월 12일(월) 00:00
수압궤도를 이용해 광물을 이용하고, 아슬아슬하게 설치된 레일 위에서 일하는 조선인 강제동원자들.
“아버지께서는 옥매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 다쳤던 다리가 점차 악화돼, 결국 두 다리를 끌며 움직일 정도로 후유증이 심각했습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가 보고한 ‘해남 옥매광산 노무자들의 강제동원 및 피해실태 조사’에 따르면 옥매광산 강제동원 피해자로 공식 결정된 피해 인원수는 총 9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89건은 제주도 해상 조난 피해와 관련된 사례이며 나머지 5건은 옥매광산에서 강제 동원돼 발파 작업을 하던 중 크게 다쳐 장애를 입은 경우다.

동원된 노동자들의 연령 구성도 주목된다. 제적부상 1933년생과 1932년생 각 1명이 포함돼 있어 10세~15세 청소년들도 강제 노동에 동원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15세~20세와 21세~25세 구간도 각각 14명, 26세~30세는 8명이 포함되는 등 전체적으로 청년층의 비율이 높았다. 고령층인 51세 이상은 총 6명이 포함돼 있었다.

동원 이후 생존한 이는 5명에 불과하고 후유장애를 입은 사례가 1건, 국외 강제동원 후 귀국해 1938년~1945년 사이 국내에서 사망한 이도 43명에 달한다. ‘동원 중 사망’으로 분류된 인원은 45명인데 이들은 모두 해방 직후 귀환 도중 일어난 해상 조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문제가 된 해상 조난 사고는 옥매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제주도로 가지 않으면 배급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따라 강제로 이동시킨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가운데 일부 인원은 구조됐지만 폐 손상 등으로 귀환 후 2년 만에 사망했고, 많은 이들이 호흡기 질환 등 만성 질병에 시달렸다. 연령대별 피해 심각성은 51세~55세 구간에서 가장 컸다. 해당 연령층으로 동원된 6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46세~50세 구간에서도 14명 중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른 연령대 역시 사망률이 50%를 넘는 등, 전체적으로 극심한 희생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노동의 대가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피해자 강모 씨의 아들은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광산 아래 바닷가에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부두가 있었고, 그곳을 통해 광산에서 캐낸 광물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고 했다”며, “월급은 전혀 받지 못했고, 지급받기로 했던 통장이나 관련 증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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