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부친 한승원 소설가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엉뚱한 사고’ 치기 때문에 혹시 하는 기대도 있었다”
노벨문학상 한강 부친 한승원 소설가 “국민적인 열망 터져 나온 것 같아”
“딸의 소설 굉장히 서정적이고 섬세…상처 입은 영혼의 실존 그려”
“딸의 소설 굉장히 서정적이고 섬세…상처 입은 영혼의 실존 그려”
![]() 한승원 소설가 |
“강(한강)이의 소설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섬세합니다. 여린 상처 입은 영혼의 실존이랄까, 그것을 심감있게 묘사하지요. 그 흉내는 우리 같은 앞선 세대 작가들은 결코 흉내를 내지 못하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딸의 작품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소 지쳐 있었지만 잔잔한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한승원 작가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며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에는 내심 한 가닥 기대는 있었다”며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엉뚱한 사고’를 치기 때문에 혹시 받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도 발표 10일 정도 전에 나이 많은 작가들이 후보로 거론되다 탈락을 하고 후보에도 없던 작가가 선정된 경우가 많았다”며 “10월 초 언론에서 내보내는 추측성 기사는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게 못 되더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에도 어느 언론에서 후보 맨 말미에 황석영 작가와 한강을 거론했더라”며 “그다지 기대를 안했지만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사고’를 치니까 아비로서 수상 기대까지 접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한승원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부인 임감오 여사와 얼싸안고 춤을 췄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아서 자식들을 잘 낳아 길러준 것이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는 발표 소식을 듣고 그냥 잠을 잤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밤새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기자들로부터는 전화가 왔지만 전화기를 꺼놓을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에 불이 나게 전화가 왔었음은 불문가지다.
물론 한강 작가에게도 밤늦게까지 수많은 전화가 걸려왔을 것이다. 필자도 어제 숱하게 한강 작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대해 한승원 소설가는 “강이의 전화번호를 대부분 기자들이 모르는 까닭이 있다. 2달 전 해킹이 돼 전화번호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20여 일 전 딸이 이사를 해서 여러모로 여력이 없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정작 수상자인 한강과 가족들보다 지역민들과 국민들이 더 좋아했다. 국가적인 경사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그리고 국내의 여러 답답한 상황들로 많은 이들이 지쳐 있는 상황에 내린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매년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죠. 그러다 이번에 국민적인 열망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잔치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딸이 ‘세계에서 전쟁이 나고 그러는데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 원래는 지금 살고 있는 안양면 해산토굴과 태어난 회진리에서 두번 잔치를 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새 고민을 하고 답을 내놓은 딸의 깊은 사유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이면서도 의미있는 평가를 했다. “강이가 포착한 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꽉 묻혀 사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여린 삶의 슬픈 실존이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는 거였다.
“나와 같은 3세대 작가들이 활동하던 80년대가 리얼리즘 시대였다면 강이는 4세대 작가들입니다. 3세대들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 저항적인 작품을 썼지요. 소설적인, 미학적인, 기법적인 심미적인 장치보다는 대체로 작품이 고발로 끝나버리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러나 제4대 작가들은 저항하는 이후의 여린 삶에 포착을 했어요. 특히 강이가 주목한 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꽉 묻혀버린 사람들, 여린 삶의 슬픈 실존이 소설의 핵심 토대를 이룹니다.”
한 작가는 딸의 작품을 예로 들며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채식주의자’(맨 부커상 수상 작품)는 고기를 먹지 않는 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해 트라우마에 잠겨 있는 삶이 주요 테마다. 다음의 작품이 5·18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온다’인데, 소설은 저항이나 항거를 밀도있게 그린 것이 아니라 항쟁기간 이후의 실존,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췄다. 미려한 문체의 미학과 아울러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깊이있게 추구한 소설이다.
그는 “딸의 문장은 지극히 서정적이며 아름답다”며 “자신과 같은 3세대들은 아무리 탁월해도 흉내낼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맨부커상 심사위원들이나 이번 한림원 심사위원들은 그런 미학적인 면들을 감안한 듯했다. 그들은 작품에서 어떤 리얼리즘을 느끼면 과감하게 탈락을 시키는 것 같다”며 “강이의 소설이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그런 연유도 있지 않나 싶다”고 부연했다.
한 작가는 리얼리즘의 유입과 이후의 문학 사조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사실 유럽의 발자크 사실주의, 리얼리즘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2세대, 3세대들이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창 풍미하던 무렵 남미문학이 들어왔죠. 대표작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이지요. 신화적이며 환상적인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리얼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나 평론가들 가운데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썼던 작품에 그런 분위기가 섞여 있다고 봤습니다. 내 소설은 리얼리즘 정도를 거치지 않은 작품이 많죠. 전남대 교수인 장일구 평론가는 내 작품에 대해 ‘리얼리즘 작가들의 ‘무덤’은 신화를 기웃거리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지요.”
한 작가는 평론가의 말은 ‘더 이상 리얼리즘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해 3세대 소설은 리얼리즘 비평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말이었다.그와 달리 제4대 작가들은 리얼리즘 본 궤도로 나아가는 소설가들은 거의 없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영예를 안은 한강 작가에게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심미적이며 시적인 문체와 삶의 본질을 천착하는 주제의식은 향후 K문학의 세계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 노벨상 수상작가들이 70, 80대 노년의 때에 영광을 거머쥔 것에 비하면 한강 작가는 이제 고작 50초중반이다.
한승원, 한강 두 부녀의 소설 창작의 신화는 다시 시작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딸의 작품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소 지쳐 있었지만 잔잔한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에는 내심 한 가닥 기대는 있었다”며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엉뚱한 사고’를 치기 때문에 혹시 받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도 발표 10일 정도 전에 나이 많은 작가들이 후보로 거론되다 탈락을 하고 후보에도 없던 작가가 선정된 경우가 많았다”며 “10월 초 언론에서 내보내는 추측성 기사는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게 못 되더라”고 덧붙였다.
한승원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부인 임감오 여사와 얼싸안고 춤을 췄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아서 자식들을 잘 낳아 길러준 것이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는 발표 소식을 듣고 그냥 잠을 잤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밤새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기자들로부터는 전화가 왔지만 전화기를 꺼놓을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에 불이 나게 전화가 왔었음은 불문가지다.
물론 한강 작가에게도 밤늦게까지 수많은 전화가 걸려왔을 것이다. 필자도 어제 숱하게 한강 작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대해 한승원 소설가는 “강이의 전화번호를 대부분 기자들이 모르는 까닭이 있다. 2달 전 해킹이 돼 전화번호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20여 일 전 딸이 이사를 해서 여러모로 여력이 없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정작 수상자인 한강과 가족들보다 지역민들과 국민들이 더 좋아했다. 국가적인 경사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그리고 국내의 여러 답답한 상황들로 많은 이들이 지쳐 있는 상황에 내린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매년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죠. 그러다 이번에 국민적인 열망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잔치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딸이 ‘세계에서 전쟁이 나고 그러는데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 원래는 지금 살고 있는 안양면 해산토굴과 태어난 회진리에서 두번 잔치를 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새 고민을 하고 답을 내놓은 딸의 깊은 사유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이면서도 의미있는 평가를 했다. “강이가 포착한 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꽉 묻혀 사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여린 삶의 슬픈 실존이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는 거였다.
“나와 같은 3세대 작가들이 활동하던 80년대가 리얼리즘 시대였다면 강이는 4세대 작가들입니다. 3세대들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 저항적인 작품을 썼지요. 소설적인, 미학적인, 기법적인 심미적인 장치보다는 대체로 작품이 고발로 끝나버리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러나 제4대 작가들은 저항하는 이후의 여린 삶에 포착을 했어요. 특히 강이가 주목한 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꽉 묻혀버린 사람들, 여린 삶의 슬픈 실존이 소설의 핵심 토대를 이룹니다.”
한 작가는 딸의 작품을 예로 들며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채식주의자’(맨 부커상 수상 작품)는 고기를 먹지 않는 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해 트라우마에 잠겨 있는 삶이 주요 테마다. 다음의 작품이 5·18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온다’인데, 소설은 저항이나 항거를 밀도있게 그린 것이 아니라 항쟁기간 이후의 실존,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췄다. 미려한 문체의 미학과 아울러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깊이있게 추구한 소설이다.
그는 “딸의 문장은 지극히 서정적이며 아름답다”며 “자신과 같은 3세대들은 아무리 탁월해도 흉내낼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맨부커상 심사위원들이나 이번 한림원 심사위원들은 그런 미학적인 면들을 감안한 듯했다. 그들은 작품에서 어떤 리얼리즘을 느끼면 과감하게 탈락을 시키는 것 같다”며 “강이의 소설이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그런 연유도 있지 않나 싶다”고 부연했다.
한 작가는 리얼리즘의 유입과 이후의 문학 사조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 지난2016년 광주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강 작가 |
한 작가는 평론가의 말은 ‘더 이상 리얼리즘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해 3세대 소설은 리얼리즘 비평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말이었다.그와 달리 제4대 작가들은 리얼리즘 본 궤도로 나아가는 소설가들은 거의 없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영예를 안은 한강 작가에게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심미적이며 시적인 문체와 삶의 본질을 천착하는 주제의식은 향후 K문학의 세계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 노벨상 수상작가들이 70, 80대 노년의 때에 영광을 거머쥔 것에 비하면 한강 작가는 이제 고작 50초중반이다.
한승원, 한강 두 부녀의 소설 창작의 신화는 다시 시작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