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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요 작품들 - 아르세날레 전시관
‘황무지’…서구 문명에 파괴된 토착민들의 터전 고발
마오리족 여성작가 4명 작품 ‘타카파우’
베니스비엔날레 대상 황금사장상 수상
영국 출신 잉카 쇼니바레 ‘난민 우주인’
허술한 문명 상징 낡은 잡동사니 ‘눈길’
멕시코 작가 산체스 케인 ‘프레타 파트리아’
남성 중심의 사회·권력 헤게모니 풍자
2024년 06월 17일(월) 19:45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작가 4명으로 구성된 마타아호 컬렉티브(Mataaho Collective)의 ‘타카파우’(Takapau).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국제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물의 도시’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2년 마다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신한다. 올해로 12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진원지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로 개막 두 달째를 맞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20일~11월24일)는 지아르디니 공원(센트럴 파빌리온, 본보 6월13일자)과 아르세날레 전시관 등 두 곳에서 본전시가 펼쳐진다.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331명의 작가들을 통해 가장 먼저 정착해 삶의 터전을 일궜던 선주민이 외국인으로 밀려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타국을 떠도는 디아스포라, 주류사회에서 차별받는 성소수자 등 백인중심의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 무대는 지아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용봉동에 위치한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주제전을 선보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하지만 본전시가 두 곳에서 열린다고 해도 관람객들에게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여서 일정이 바쁜 이들은 오전, 오후로 나눠 관람해도 주요 작품과 국가관을 둘러 볼 수 있다. 본전시 이외에 지아르디니 공원에는 한국, 미국, 독일 등 30개국의 국가관이 자리하고 있고, 아르세날레에는 중국, 남미 등 50여 개국의 국가관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베니스에 도착한 다음날, 아르세날레로 향했다. 수로를 끼고 걷다 보니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우거진 지아르디니 공원과 달리 19세기 조선소와 병기창이었던 건물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아르디니가 전통적인 미술개념인 회화, 사진 등의 화이트 큐브 전시라면 층고가 높은 아르세날레는 스펙터클한 설치작품들을 구현하는 역동적인 장(場)이다.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
전시관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화려한 문양의 옷을 입은 실물 크기의 외계인이 눈에 들어온다. 영국 출신의 잉카 쇼니바레(Yinka Shoinbare)의 ‘난민 우주인’(Refugee Astronaut VIII)이다. 얼핏 보면 제주도 해녀가 바다에서 체취한 그물바구니를 등에 지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낡은 그물의 봇짐과 우주인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은 최첨단 문명인 우주탐사와 낡고 오래된 잡동사니의 조합을 통해 현대사회의 허술한 문명을 상징한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담은 전시 주제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와 오버랩되는 작품이다.

우주인을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작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작가 4명으로 구성된 마타아호 컬렉티브(Mataaho Collective)의 ‘타카파우’(Takapau)다. 지난 4월20일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국제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타카파우’는 직조기술로 제작한 대규모 텍스타일 작품이다. 마오리족 여성들이 출산 등 주요 의식에 사용하는 전통 직조물을 천장과 벽면에 설치한 대형 작품으로 전시장의 조명과 어우러져 신비롭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아르세날레의 다리에 설치된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 20개의 언어로 쓰여진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의 네온사인이 인상적이다.
높은 천장과 옛 조선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시장은 그 자체만으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화려한 색감과 자유 분방한 화면이 가득한 공간을 지나자 압도적인 스케일의 설치 작품이 시선을 빼앗는다. 뉴질랜드 조각가 브레트 그래햄(Brett Graham)의 ‘황무지’(Wastelands)이다.

주로 마오리족의 원시적 삶과 문화,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을 형상화해온 그는 대립종 나무와 스틸 등을 마차 바퀴 형상으로 제작해 서구 문명에 의해 파괴된 토착민들의 터전을 고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황무지’는 마오리족에게는 귀중한 자원이자 습지였지만 유럽인에서 온 이주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고갈된 옛 목초지를 역설적으로 상징한다.

몇몇 작품들을 지나자 유독 많은 관람객들이 에워싼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 명의 군인이 천장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모습이 흥미롭다. 멕시코 출신의 작가이자 패션디자이너인 바바라 산체스 케인(Barbara Sanchez-Kane)의 ‘프레타 파트리아’(Pret-a-Patria). 파리의 유명 패션쇼인 프레타 포르테에서 따온 작품으로 남성들의 백팩(back pack)을 통해 드러난 빨간색 레이스가 달린 군복은 남성 중심의 사회와 권력의 헤게모니를 풍자한다.

아르세날레의 또 다른 ‘핫한’ 작품은 안토니오 호세 구드만(Antonio Jose Guzeman)과 이바 얀코비치(Ivan Jankovic)의 ‘순환 시스템’(Orbital Mechanics, from the Electric Dub Station series)이다. 지아르디니의 전시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시장을 압도하는 설치작품들이 많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무대로 작업하고 있는 두 사람은 오늘날의 세계가 식민사회와 이주 등을 거쳐 어떻게 변화되고 형성되어 왔는지 인디고 블루의 추상적인 문양이 인상적인 대형 텍스타일과 사운드 스케이프(sound scape) 등으로 표현했다.

본 전시장을 나오면 아르세날레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예술가 그룹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가 기다린다. 19세기 조선소였던 이 지역의 어두운 다리 밑을 20개국의 언어로 적힌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물위를 수놓은 작품이다. 지난 2004년부터 동명의 작품을 시리즈로 작업하고 있는 이들은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풀비아 카르네발레(Fulvia Carnevale)와 영국의 제임스 톤힐(James Thornhill) 등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어로 ‘맑은 샘’(Clear Fountain)을 뜻하는 클레어 퐁텐은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에서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네온사인, 벽돌 등 ‘레디 메이드’(기성품)를 소재로 한 독특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빨강과 노랑, 파랑 등 형광색으로 쓰여진 여러 나라의 언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이방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