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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밀리환초 사망자 214명 ‘전남 출신’
강제동원 시민모임 7일 명단 공개…조선인 희생자 218명 첫 확인
2024년 06월 04일(화) 20:15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려 피골이 상접한 조선인들이 미군 배에 의해 구출되는 장면. <국사편찬위원회>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태평양 남양군도 밀리환초에 끌려가 숨진 218명의 조선인 가운데 214명이 전남에서 끌려갔다는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제시됐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은 오는 7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일제 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밀리환초 학살사건’을 폭로하고 일제의 만행을 고발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전남 피해자들을 조명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다케우치씨의 연구결과 학살된 조선인중 55명은 담양 출신 25명을 포함해 모두 전남이 본적지로 확인됐다. 이들을 포함해 강제노역 당시 숨진 희생자는 총 218명에 달했다.

2010년 정부(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조사를 통해 밀리환초 학살 피해자의 성(姓)과 출신 군(郡)이 일부 밝혀진 바 있지만, 이번 고발에서 학살 희생자 55명을 포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망자 218명의 성명 전체와 본적지 등이 공개된다.

밀리환초 학살사건은 1945년 2월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 사건에 저항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가 학살된 사건이다.

1942년 초 조선인 군무원 800∼1000명은 비행장 등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마셜제도 동남쪽 끝에 있는 밀리환초로 강제 동원됐다.

이 곳은 크고 작은 100여개 섬이 가늘고 둥근 띠 모양을 이루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최전방 요충지였다. 원주민 500여명이 살던 섬에 일본군과 징용 조선인이 몰려오면서 1944년 초 거주 인원은 5300여명을 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토질과 기후가 좋지 않은 데다 미군 공격으로 1944년 6월 이후 식량 보급이 막히자 일본군은 섬에 흩어져 식량을 채집하거나 농경, 어로로 생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945년 2월 28일 체르본 섬에 살던 조선인 120여명이 감시 목적으로 파견된 일본인 11명 중 7명을 숲속으로 유인해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1945년 초 일본인이 숙소로 ‘고래고기’라며 건네줘 허기진 조선인들이 먹었는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진 채 숨진 조선인 사체가 발견됐다.

조선인들은 곧바로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었고 조선인에게도 공급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저항했다.

조선인들 둔기나 곡괭이를 휘두르거나 돌과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55명의 조선인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한편 시민모임과 다케우치씨는 밀리환초 강제 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피해자 또는 유족을 찾고있다. 피해자나 유족은 시민모임으로 연락하면 된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