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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4년 05월 09일(목) 21:30
120년. 강산이 열 번하고도 두 번 더 바뀐 시간이다. 독일 프로축구 바이엘 레버쿠젠 팬들은 1904년 팀 창단 이후 120년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우승의 기쁨을 맛 봤다. 축구는 22명이 90분간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고, 분데스리가는 1년 내내 18개 팀이 싸우다가 결국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하는 리그라고 한다. 그런데 준우승만 5차례 하며 ‘절대 우승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네버쿠젠’이라 조롱받던 팀이 놀랍게도 무패의 성적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레버쿠젠의 우승 배경에는 사비 알론소 감독이 있다.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뛰며 빼어난 축구 센스와 대지를 가르는 정확한 롱 패스로 유명했던 그는 영국·스페인·독일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까지 수집한 보기 드문 선수였다. 감독복도 많았다. 안첼로티·무리뉴·과르디올라·델보스케 등 명장들을 거치며 배운 리더십과 다양한 전술 철학은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알론소 감독은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지향한다. ‘알론소볼’로 불리는 그의 전술은 선수들이 매 순간 경기 상황에 맞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컴퓨터게임을 하듯 치밀한 공격과 수비를 펼친다. 슈퍼스타가 없어도 포지션 파괴를 통해 공격 루트를 다양화한 전략으로 최강의 팀을 만들고 있다. 그를 보면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며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올랐던 한국은 이후 축구협회의 잇따른 헛발질과 클린스만 사태를 겪으며 추락을 거듭해 이젠 동남아 팀들마저 만만하게 보는 ‘종이호랑이’ 신세가 됐다.

‘알론소볼’ 열풍은 K리그에까지 불어오고 있다. 광주FC 이정효 감독의 ‘정효볼’이다. 이 감독은 알론소처럼 치밀한 전술로 2부 리그에 떨어진 팀을 K리그1으로 승격시키고 지난 시즌에는 3위를 차지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광주FC의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하위권인 8위. 광주 팬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jk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