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맨발걷기 EARTHING 열풍] 맨발로 만나는 자연 … 이토록 아름다운 즐거움
발에 흙 직접 닿는 ‘접지’ 통해
건강 개선되고 자유로움 만끽
광주·전남 등 전국적으로 인기
만성질환에 시달리던 노부부
스트레스·혈압 감소, 숙면 효과
걷다 만나는 주민들과 친교는 덤
신발장·세족대 등 설치 필요
2024년 03월 26일(화) 19:00
맨발로 흙과 접촉하며 걷는 맨발걷기가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자연 치유와 함께 건강증진, 주민간 친교(親交) 등 다양한 효과가 뒤따른다. 광주시 남구 노대동 분적산 편백나무 숲길에서 맨발걷기를 하고 있는 박도진·최효숙 부부(중앙)와 시민들.
전국적으로 맨발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맨발로 흙길을 걷는 ‘어싱’(Earthing·접지)을 통해 치유와 힐링의 기쁨을 만끽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맨발걷기 대중화를 위해서는 ‘접지권’(接地權)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속 황톳길과 정원 속 어싱길 등 이색적인 맨발걷기 코스도 조성되고 있다. 생동하는 새봄, 맨발로 흙길을 걸어보자!

◇‘맨발걷기 100일 대장정’ 건강 되찾아 =“생전 늙지도 아프지도 않을 듯한 자신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위기가 만 65세 되자마자 일어나고 말았어요. 평소에 등산과 수영, 헬스를 꾸준히 해서 튼튼한 줄 알았거든요. 2022년 7월에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을 세 번했고, 2023년 2월에 간농양으로 18일간 입원 치료를 했습니다. 7월 종합 건강검진에서 폐결절(덩어리)이 발견됐어요. 게다가 백내장 수술을 하고, 대장용종을 떼어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의 모든 문제가 맨발걷기로 해결이 됐어요!”

박도진(74)·최효숙(67) 부부는 지난해 10월 31일 광주시 남구 주월동 금당중학교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맨발걷기를 시작했다. 2022~2023년 두 해에 걸쳐 잇따라 병마에 시달리며 간절하게 ‘살길’을 찾는 부인을 위해 남편이 맨발걷기를 권유했다.

최 씨는 맨발로 흙길을 1시간 가량 걷고 온 그날, 모처럼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면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1시간~1시간 30분 동안 맨발걷기를 했다. 겨울철에도 ‘맨발걷기 100일 대장정’을 강행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예술(시·피아노·첼로)을 좋아하는 남편과 스포츠(수영·등산)를 즐기는 부인간에 자연스럽게 ‘맨발걷기’라는 공통분모가 형성됐다. 맨발걷기 장소 또한 금당중 운동장에서 차츰 금당산 둘레길,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 남구 노대동 분적산 등지로 넓혀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규칙적인 식(食)생활과 숙면, 스트레스·혈압감소, 폐결절 축소 등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전남을 비롯한 전국에 맨발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와 ‘광주맨발학교’ 등 관련 단체들이 결성돼 맨발걷기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광주·전남 각 지자체에서도 ‘맨발걷기 학교’를 운영하고, 관내에 흙길 맨발걷기 코스를 조성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다. 붐이 일기 전 2018년 일찌감치 개장한 영광 ‘물무산 행복숲 질퍽질퍽 황톳길’(4월 1~10월 30일 운영)은 맨발걷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맨발걷기를 즐기는 이들은 자연치유 효과를 ‘어싱’(Earthing)이론으로 설명한다. 아직 학술적·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다.
◇주민들 맨발걷기 하며 건강증진·친교(親交)=지난 3월 10일 오후, 박도진·최효숙 부부와 사전 약속해 광주시 남구 노대동 진남중 정문에서 만났다. 맨발걷기를 시작한 지 꼭 132일째, 분적산을 찾은 것은 3월 들어 세 번째라고 했다. 효덕제를 지나면 입구에 ‘분적산 더 푸른 누리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사유 임야이지만 함안 윤씨 좌랑공 종중의 배려로 주민들의 건강과 힐링을 위한 맨발걷기와 산책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기자님도 한번 맨발 벗어봐야지 그 느낌을 안다니까요. 여기 절대 안전해요.”

부부가 기자에게 맨발걷기를 권했다. 맨발걷기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분적산 맨발걷기 코스는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로 이뤄져 있다. 나무뿌리가 드러난 구간도 있고, 판판한 흙길도 있다. 싸목싸목 걷다보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금당산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데크에 이른다. 동행한 50대 여성은 3월 1일 처음으로 분적산을 찾았다가 박도진·최효숙 부부를 만나며 친해져 맨발걷기를 함께 한다.

“3월 첫 날, 처음으로 맨발걷기를 하려고 여기에 왔는데 날씨가 추웠어요. 발이 시려워서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팔딱팔딱 뛰고 있는데 언니를 만난 거예요. 언니가 ‘처음에는 다 그럴 수 있다’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감을 주더라고요. 아마 언니 안 만났으면 포기했을 것 같아요. 그날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안 쉬었어요. 평일에는 퇴근하면 학교 운동장을 돌고, 주말에는 여기로 와요. 일단 나오면 대화하고 햇볕도 보고 잡념도 없어지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아마 계속 (맨발걷기를) 하면 조금씩 건강이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산을 하며 잠깐 휴식을 취하다 우연하게 노대동 주민 40여 명의 맨발걷기 모임인 ‘분적산 맨발’ 박현용(69) 지회장(전 조선대 교수)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분적산을 찾아 맨발걷기를 하는 까닭에 대해 물었다.

“일단 집에서 가깝습니다. 한 400m 되는데 여기가 다른 길에 비해서 인위적이지 않고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소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 황톳길과 나무뿌리길, 자갈길이 있어서 다른 데보다 훨씬 더 조화롭고, 좋은 것 같아요. 2023년 6월에는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님을 모시고 100명 넘게 같이 걸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숲과 맑은 공기를 접하기 위해 일부러 노대동으로 이사를 온 70대 주민은 맨발걷기의 매력으로 건강증진과 함께 주민간 친교(親交)를 꼽았다.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데도 여기 와서 알게 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건강도 건강이지만 친교가 제일입니다.”

주민들은 앞으로 분적산 맨발걷기 코스가 ‘아름다운 길’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남구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코스 황토 보강과 함께 벗어둔 신발을 둘 수 있는 신발장과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세족대), ‘분적산 맨발걷기 길’ 표지판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맨발걷기 대중화 위해 ‘접지권’ 보장해야= “그것은 대지와의 오랜 격리를 해소하는 뜻깊은 의식이었고, 맨발로 땅을 밟으며 어머니 대지와 일체가 되는 합일의 첫걸음이었다. 또한, 그동안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는 치유의 열쇠였고, 자연을 온몸으로 사랑하게 하는 깨우침과 생명의 한 소식이 되었다.”

‘맨발걷기 전도사’로 나선 박동창 회장은 저서 ‘맨발걷기의 기적’(2019년) 프롤로그 ‘맨발로 걷는 즐거움에서 치유로의 진화’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여기에서 ‘그것’은 맨발걷기를 뜻한다. 장자크 루소와 임마누엘 칸트는 걷기를 통해 사유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도 표현한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는 맨발걷기 대중화를 위해 2023년을 ‘전국민 맨발걷기의 원년’으로 정하고,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을 ‘온국민 맨발걷기의 날’로 지정했다. 특히 ‘접지권’(接地權) 입법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120여개 지자체에서도 ‘맨발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해 맨발걷기 대중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 회장은 접지권에 대해 “국민누구나 집 근처 흙길에서 그리고 공원에서 맨발로 땅을 밟으며 산책하고 바로 옆에 설치된 세족대에서 발을 씻고 귀가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한다.

직립 보행(直立 步行)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이제 피부의 일부 같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시 흙길을 찾는 행위는 자그마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일반적인 걷기가 아닌 맨발걷기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앞으로 맨발걷기가 건강증진은 물론 경쟁과 성과위주의 한국 사회 병폐를 해소하고, 양분된 정치적 이념을 통합하며 철학적 사유로 나아가는 사회적·의학적 처방으로 작용하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박도진 시인이 부인의 건강회복을 위해 맨발로 함께 걸으며 쓴 신작 ‘맨발걷기’ 시를 읽어본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의 즐거움/ 맨발 밑에서 스며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치마폭처럼 온몸을 감쌉니다 오솔길에서, 해변가에서, 황톳길에서/ 오늘도 나를 부르는 소리 있어/ 임을 향해 사뿐사뿐 맨발로 걸어갑니다 치유의 기적을 부르는 콧노래가/ 함께 걷는 그대의 붉은 입술에도/ 변함없이 머물 것입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