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일본 보호국화 정책에 맞선 동학선열 서훈해야 -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2024년 02월 29일(목) 00:00
2024년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04년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의 제정과 2019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많은 선양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미완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 즉 독립유공자 서훈이 단 한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에 의해 탄생했기에 1962년부터 을미의병 참여자를 서훈하기 시작했다.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을미의병과 똑같은 항일 무장투쟁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에 대해서는 1977년 손화중 불가 판정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독립 운동사를 전공한 필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2차 동학농민혁명이 항일 독립운동이기에 그 참여자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해야 함을 주장한다.

침략자 일본군은 1894년 6월 21일(양력 7월 23일) 경복궁 점령사건을 일으켜 남의 나라의 왕궁을 점령하고 국왕을 포로로 잡고 조선 군대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기존의 민씨 정권을 타도하였으며 친일 개화파 정권을 세웠다. 1894년 경복궁 점령사건은 남의 나라의 국권을 현저하게 침탈한 사건이었다. 청일전쟁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청일전쟁은 일본의 조선 침략 전쟁이었고 청군 축출 전쟁이었다.

1894년 7월 17일(양력 8월 17일)에 일본 내각은 “일본이 직간접적으로 영구히 또는 장기간 조선을 보호국으로 한다.”(보호국화안)라고 의결했다.(무쓰 무네미쓰, ‘건건록(蹇蹇錄)’, 일본 외무성, 1896년) 이 날에 일본이 조선 보호국화를 결정했다. 보호국화는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보호국화는 식민지화를 의미한다. 일본 내각회의에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내무대신 이노우에 가오루가 참석하여 의결하였다.

일본은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청일전쟁 전 기간(1894년 7월 23∼1895년 3월 17일)에 걸쳐 추진하였다.

첫째로, 보호국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였다. 경부·경인간 철도 부설권 및 군용 전신선 관할권 등의 이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조일 잠정합동조관’의 체결(8월 20일)을 강요하였다. 일본군에게 식량 등 편의를 제공한다는 ‘조일 양국맹약’의 체결(8월 26일)을 강요하였다.

둘째로,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반대하는 항일 동학농민혁명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1894년 9월 29일(양력 10월 27일)에 이토 히로부미 수상(총리대신)이 히로시마 대본영에서 병참총감 가와카미 소로쿠와 상의하여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죽이라”라는 살육 작전을 결정하였다. 이날 동학농민군 학살을 전담할 3개 중대 파견도 결정하였다. 일본군은 3만명에서 5만명의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였다.

셋째로, 주한 특명전권공사로 부임한 이노우에 가오루가 실질적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재임기간 그는 식민지 총독처럼 군림하였다. 그는 박영효 중심의 친일 정부를 수립시켰다. 아울러 조선정부의 군사고문·경찰고문·법제고문·재정고문·내부고문에 일본인 고문관을 배치하여 보호국화를 꾀하였다. 그는 궁극적으로 조선을 영국의 실질적인 보호국인 이집트와 같은 보호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이상은 유영익의 연구 참조)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일제의 보호국화 정책에 맞서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2차 동학농민혁명이 그해 9월에 일어났다. 침략자 일본군과 2차 동학농민혁명군과의 전쟁이 전개되었다. 2차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맞선 항쟁이었기에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과 2차 동학농민혁명의 끈질긴 항쟁 때문에 일제는 1895년 6월에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였다.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2차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고,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라고 논문과 저서에서 주장하였다.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145명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였다. 을미의병을 능가한 항일 독립운동이 2차 동학농민혁명임에도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게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단 한명도 하지 않아, 을미의병 참여자의 서훈과 비교하여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이제라도 국가보훈부는 전봉준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