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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암송으로의 초대 - 문길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2024년 02월 22일(목) 00:00
시 암송을 처음 경험한 건 중학생 때였다. 2학년 때 곱슬머리 상업 선생님이 수업 중에 시를 외워보겠다며 소월의 ‘초혼’을 읊으셨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엔 김용호의 ‘오월의 유혹’, 유치환의 ‘깃발’,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등이 실려 있었다. 어느 초여름, 문학을 좋아했던 친구와 저녁 무렵 광주 교외 어느 저수지 산책을 갔었다. 친구는 저수지 가에 있는 편평한 돌에 앉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또박또박 외웠다. 무언지 모를 신비감에 싸인 채 말없이 저문 들길을 함께 걸어 돌아왔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장교로 임관하여 전방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예비사단이라 상급 부대의 검열이 많아 늘 긴장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이때 푸쉬킨의 ‘삶’이란 시가 떠올랐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난 것은 그리워한다”는 구절이 위안을 주었다. 이 시를 읊조리면서 내 병사들에게도 소개하고 외우게 했다.

프랑스 유학 중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숙제라고 들고 온 것이 ‘시 외우기’였다. 매주 한 번, 유일한 숙제였다. 이 숙제는 초등 졸업 때까지 계속되었다. 귀국 후 지인 한 분이 전화로 시를 몇 편 외워 주었다. 듣자니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우기로 결심하고 외워나갔다. 암송 시가 늘어갈수록 성취감이 높아지고 즐거움이 생겼다. 이 행복을 이웃들과 나누고 싶어 ‘시암송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좋은 시를 소개하면서 암송 운동을 시작했다.

암송 운동을 하면서 여러 책과 강연과 자료를 통해 우리 시대의 뛰어난 스승들도 시 암송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 일에 더욱 마음을 바치게 되었다. 몇 분의 시 암송 사랑 고백 글을 소개한다.

“철학책을 읽고 시를 외워라.”(‘혼불’ 작가 최명희 선생), “시를 욀 때마다 찾아오는 그 가슴 울렁거리는 청춘의 기쁨!”(박완서·작가), “시 감상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건 시 외우기이다.”(나태주· 시인), “시 암송은 따분한 일상적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피천득·수필가), “한 편의 시 암송은 마음에 꽃 한 송이 꽂는 일이다.”(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시 암송은 아이를 창의적인 인재로 이끄는 지름길이다.”(김용규·철학자) “시를 읽거나 암송하다 보면 ‘참 좋다’ 할 때가 있다. 이때 뇌에서는 치유가 일어난다. 그래서 시는 마음의 약이기도 하다.”(이무석·전남의대 정신과 명예교수)

시를 굳이 왜 외워야 하는지, 묻는 이들을 위해 ‘시를 외우면 좋은 12가지 이유’를 정리해 봤다.

1) 자연, 인정, 지혜와의 깊은 만남을 갖게 한다. 2) 암송시는 평생 친구가 된다. 3) 자투리 시간을 선용할 수 있다. 4) 단조로운 일을 할 때 동시에 할 수 있다. 5) 모임에서 노래 대신 할 수 있다. 6) 함께 외우면 친밀감을 높여 준다. 7) 암송 시는 선물로 활용할 수 있다. 8) 바르고 고운 말하기에 도움이 된다. 9) 좋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10) 성취감을 갖게 해 준다. 11) 상상력을 높여 준다. 12) 뇌세포의 활성화로 치매를 예방해 준다.

이 밖에도 암송의 직접적인 쓸모에 대한 얘기도 있다. “암송이란 작가와 암송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암송을 통해 작품에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범대순·시인 전남대 영문과 교수 역임), “암송하면서 학생들은 작가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문장의 의미는 물론 흐름을 알게 된다.”(이향아·시인 호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교육받은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명시 100편쯤 암송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300편의 시를 외우게 한다는 말을 듣고 부러웠다.

우리나라 국민도 암송을 가까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가을부터 ‘2년 안에 좋아하는 시 열 편 외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각계각층, 남녀노소 구분 없이 100여 명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 새봄에 의미 있는 일 하나 시작하고 싶다면 시 암송을 해 봐도 좋겠다. 분명히 보람을 느낄 것이다. 캠페인 동참을 희망하는 분에겐 휴대용 작은 시선집(50편 수록)을 선물로 보내드리겠다.(joywrit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