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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맞는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송 민 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2024년 01월 16일(화) 21:30
오는 4월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세월호 침몰 1년 전쯤 제주도 출장길이었다. 제주공항에서 세미나 장소인 서귀포 호텔까지 택시를 탔다. 당시 택시기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선상 불꽃놀이와 게임룸과 샤워실까지 완비한 국내 최대, 최고의 초호화 유람선이 인천과 제주를 오간다’라고 소개했다. 침몰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 이야기였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옆으로 기울다 이틀 뒤 완전히 침몰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만 믿고 기다리다 304명이 실종된 대형 참사였다.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중 250명이 희생되었다. 그 세월호는 이제 우리 사회의 부실과 부조리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당시 세월호는 오후 6시에 인천항을 출발해 다음 날 오전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할 수 있어 숙박비 절약 차원에서 수학여행 가는 학교가 많았다. 사고가 나던 날 오전 TV 화면을 통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을 태운 선박이 좌초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계속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다가 정오쯤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뜨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허위 보도였다.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만 한 언론사들이 어이없고 가증스러웠다.

배가 심하게 기운 상태에서도 천진하게 장난치던 아이들, 헬리콥터가 왔다며 곧 구조될 것이라 기대하던 아이들, 갑판으로 나왔다가 친구를 구하겠다며 선실로 되돌아간 아이, 내 아이는 유명 브랜드 옷을 못 사줘서 옷차림으로 구별하지 못할 거라며 시신이 인양될 때마다 달려가 확인하던 어머니….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온 국민이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사건 때 생존자의 절반 이상을 해양경찰보다 40여 분 늦게 도착한 어선이나 민간 선박이 구조했다는 보도였다. 이는 미국의 9·11테러 공격 때 무너져가는 건물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소방관 343명의 희생과 비교가 된다. 세월호 참사 때는 침몰하는 배 안으로 다시 뛰어든 정규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슬픈 민낯이다.

일곱 차례나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반복된 안내방송을 믿고 제자들과 사제 동행하며 선실을 떠나지 않은 교사, 선생님만 믿고 남았던 착한 아이들, 먼저 탈출해 버린 선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어린 학생들 앞에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재작년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 사건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모두가 국가의 책임이다. 159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피지도 못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가 죽을 수 있는가. 막막한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할 때, 이태원 비탈길 골목에서 뒤엉킨 젊은이들의 숨이 멎어 갈 때, 국가는 없었다.

선진사회일수록 성장 못지않게 안전에 중점을 두어 필요한 비용을 일상적으로 내고 있다. 후진국들은 이런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의 사다리를 오르게 된다. 우리도 과거 많은 국민의 희생 위에 오늘의 성장을 기억하고 있다. 월남전에 32만 명이 파병되어 5000명이 넘는 꽃다운 생명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역사의 강이 흘러와 오늘의 한국이 이뤄져 온 것이다.

국가의 첫 번째 책무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의 위상은 선진국이 되었으나 국가 시스템은 아직 개발연대에 머물고 있다. 참사 유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더 좋은 사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는 바꿔야 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외쳤으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닌 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