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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붕괴와 지방대의 소멸 -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장
2023년 12월 26일(화) 00:00
1543년(중종 38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1495~1554)이 유생들의 교육을 위해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우리나라 서원의 시작이었다. 그 뒤 1550년(명종 5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1502~1571)의 요청에 의해 명종은 친필로 “이미 무너져버린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의미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賜額)을 내리고 아울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등의 서적과 노비도 하사했다. 학문의 도야와 후진 양성을 통해 지식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향촌사회를 교화하고 나아가 장래 정치를 이끌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포석으로 지역 사림의 교두보를 확보했던 것이다.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공인한 사학(私學)으로서의 위치가 확고해지면서 관학(官學)인 성균관(成均館)에 맞서는 이른바 ‘지방대’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 지방 인재의 양성소이자 지식 권력의 중심이었던 지방대가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수능도 끝나고 본격적으로 입시시즌이 시작됐는데, 올해 수시전형에서 199개 대학의 접수 결과 경쟁률이 6대 1을 넘지 못해 사실상 미달인 대학이 전국 102개 대학 중 지방대가 82곳(80.4%)인 반면 수도권은 20곳(19.6%)에 그쳤다. 평균 경쟁률이 서울권 17.79대1, 지방대 5.49대1로 격차가 12.3대1까지 벌어진 것이다. 80%가 미달된 지방대의 학생 유치 결과는 전체 인원의 88%를 수시로 뽑는 신입생을 상당수 못 채울 것이 분명하다.

대학의 신입생 정원이 미달되면 그 정도에 따라 학과의 폐과 혹은 통폐합이 진행되고 이것이 누적되면 결국 대학의 소멸로 이어진다. 지방대에서 문학, 사학, 철학, 수학, 물리학 등의 기초학문을 다루는 학과는 이미 사라지거나 명칭이 바뀌어 현재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취업이 잘 된다는 학과 위주로 구조조정 되고 있지만 그것도 수도권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교육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의대·치대·한의대 등의 의료계를 정점으로 서울대부터 시작되는 수직적 위계질서의 맨 밑바닥에 지방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지방대는 결국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에서 5년간 총 1천억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10개교를 지정하여 지방대 살리기에 나섰지만 총 116개교에 달하는 지방대의 10%도 안 되는 숫자다. 더욱이 지원이 대부분 국립대학에 집중돼 있고 사립대는 한림대와 울산대뿐인데 지방대 중에 그나마 형편이 좋은 대학이다. 그러니 나머지 106개 지방대의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해 서울에서 먼 “벚꽃 피는 순으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회자된다.

지방대의 생존은 재정 지원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누가 자신의 일생이 걸린 대학에 함부로 가겠는가? 취업하고자 하는 직장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거기에 쉽게 가기 위해선 소위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대가 위치한 지역에서 직업을 갖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야 굳이 서울로 가지 않지만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공화국’이 대한민국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구를 보더라도 5135만여 명의 50.7%인 2601만 여명이 수도권에 거주할 정도로 집중화는 심각하다. 인구 집중보다 더 심각한 건 산업이나 경제의 집중이다. 단순하게 부동산만 보더라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원 정도인데 5대 광역시의 평균 아파트값은 4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광역시가 3배 정도의 격차를 보이니 지방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다.

부의 편중으로 기업 본사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서 취업을 하려고 해도 취직할 곳이 없다.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광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온갖 특혜를 제공한 경북 구미시를 뿌리치고 수도권인 용인을 선택한 것도 인력수급이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도권에 이렇게 기업들이 모이니 누가 지방대로 가려고 하겠는가?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역의 균형발전이 선행돼야 한다. 여당의 주장처럼 김포나 하남시 등의 서울 편입으로 ‘메가 서울’을 만들 게 아니라 오히려 비대해진 서울의 기득권을 분산시켜 지역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 정부도 국정과제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제시했지만 실행하는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다산(茶山)조차도 두 아들에게 “중국의 문명이 풍속을 이루어 아무리 궁벽한 시골이나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는 데 방해받을 일이 없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서울 문밖으로 몇 십 리만 떨어져도 태곳적 원시사회가 된다”고 하여 ‘서울로부터 10리 안에서만 살도록’ 강조했을 정도였다. 그 시대는 ‘문화(文華)의 수혜’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먹고 사는 민생의 문제가 걸린 것이니 어찌할 것인가? 무너져버린 지방대의 상아탑을 다시 세워 이어가게 할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