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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1위 자살률, 떨어지지 않는 이유 - 정창재 도서출판 사랑채 대표
2023년 11월 20일(월) 00:00
그리스 비극의 대사다. “햇빛을 보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며, 지하세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죽기를 기원하는 자는 미친 자에요. 고상한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 더 나아요.”

이 대목은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에우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주인공이 한 말이다. 이 정황을 잠깐 살펴보면, 파리스가 에우로타스 강둑에서 헬레네를 트로이로 빼앗아 갔었다. 구혼자들의 맹세대로 헬레네를 데려오기 위해 그리스 부족국가 연합군이 모여 들었는데, 경향 각지에서 일천 척의 함선이 아울리스 항에 집결했다. 그런데 날씨 탓에 출항을 못한다.

예언자 칼카스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을 내놨다. 아가멤논은 여러 고민 끝에 준족(俊足)인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는 거짓 서찰을 보내 부인과 큰딸을 데려온다. 진상을 알게 된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전쟁과 무관한 자신이 죽게 되자 아버지께 탄원을 한 것이다.

자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는 ‘빛’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빛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먼저 자연계를 컨트롤하는 실체이자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주의를 추구했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평등사상, 휴머니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 인간은 자연 위에서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본연의 삶이었다. 자의건 타의건, 천수를 못하고 맞는 죽음이란 비참한 것이라 여겼다. 이런 그리스인들의 사상, 즉 헬레니즘 문화의 본질은 그리스 신화시대 초기, 문화 영웅들(Culture heroes)의 스승으로 알려진 키론과 그의 가르침(Precepts of Chiron)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는 키론이 아킬레우스에게 인류의 원시적 방식(Primeval ways of mankind), 신들(Gods)과 자연(Nature)을 가르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육체적 삶의 영위는 자연을 통해 할 수 있지만, 정신 세계의 충족과 마음이 건강한 인간의 육성을 위해서는 예술과 교육이 요구된다. 예술적 소양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천부적 재능이다. 그리스인들은 각자의 예술 소통을 위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이상적인 예술 장르를 개발했는데 이것이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이었다.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법, 우리 헌법 제10조와 22조에,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천부적, 즉 하늘로부터 받은 기본권으로 보장했다.

자연과 인체공학을 보면, 예술과 정신세계의 소통 과정에서 자연을 빼면 예술의 인식이 불가능해진다. 빛이 있어야 그림을 볼 수 있고, 공기 진동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술 소양을 쌓는 일은 유아기부터 해야 한다. 뇌가 백지상태일 때 예술적 이미지들을 켜켜이 쌓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릴 때 EQ를 높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성장 후,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릴 때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아킬레우스는 “나는 불행할 때는 슬픔을, 성공할 때는 기쁨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소이다”라고 말했는데, 일맥상통한 대목이다.

나는 6·25 전쟁 직후 세대로 우리가 배고프던 보릿고개와 지금 풍요가 넘치는 시대를 다 겪고 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기대는 헛된 꿈이었다. 자살은 가장 불행한 일인데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래 20년 내리 OECD 1위다. 그동안 우리는 양적 성장에만 몰두했고, 정신 세계는 돌아보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 정신 세계는 자신의 길을 지켜내지 못하고 물질 문명에 압도돼 버렸다. 길을 잃어버린 것인데 그 결과가 자살로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몇 퍼센트를 줄이겠다하고, 기구를 설치해 자살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항구적인 대책이 못된다. 엄청 몰려드는 자살 유발 요인 차단을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 예술교육을 대폭 늘리고 일정 부분 고전주의 방식의 삶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