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여순사건의 시작점 14연대 주둔지 들어가보다
![]() 14연대 주둔지 동굴 내부. |
1948년 여순사건을 일으켰던 14연대 병영이 남아있던 무기고를 찾았다.
여수시 신월동에 위치한 14연대의 주둔지에는 당시 무기고로 쓰였던 동굴과 공장의 굴뚝이 남아있었다. 박쥐가 나온다는 좁은 동굴을 지나자 특정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여수·순천10·19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저녁,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제주출병 명령에 지창수 상사 등이 거부하여 회식 중이던 장교들을 사살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제14연대 군인들은 ‘제주4·3사건 진압 파병’에 우리 국민을 죽이는 부당한 명령이라는 이유로 항명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사건 발생 후 다수의 민간인이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과정에서 희생되었다.
이승만 정부와 군경의 진압과정 및 ‘협력자’ 색출 과정에서는 관련 없는 주민들이 운동장 등에 수용되고 야산으로 끌려가 살해되기도 했다.
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피해자들은 아직도 가족이 좌익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전했다.
현재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가 진행중이며 올해 12월 31일까지 접수를 받는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여수시 신월동에 위치한 14연대의 주둔지에는 당시 무기고로 쓰였던 동굴과 공장의 굴뚝이 남아있었다. 박쥐가 나온다는 좁은 동굴을 지나자 특정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여수·순천10·19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저녁,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제주출병 명령에 지창수 상사 등이 거부하여 회식 중이던 장교들을 사살하면서 시작됐다.
이승만 정부와 군경의 진압과정 및 ‘협력자’ 색출 과정에서는 관련 없는 주민들이 운동장 등에 수용되고 야산으로 끌려가 살해되기도 했다.
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피해자들은 아직도 가족이 좌익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전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