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자연인 줄 알고 날아갔는데, 무덤이 된 투명 유리창
  전체메뉴
[현장르포]자연인 줄 알고 날아갔는데, 무덤이 된 투명 유리창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현장조사 동행해봤더니
2시간 만에 20여구 사체 발견…“지자체 노력 필요”
2023년 06월 19일(월) 20:15
13일 오전 어린 물까치가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방음벽 아래 죽어있다.
광주시에서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것으로 확인된 새는 지난해 2626마리로 총 62종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연간 약 1000만 마리의 야생조류가 건물과 유리창, 투명 방음벽에 부딪쳐 죽는다.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를 알리고 저감조치를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는 동물권단체 ‘성난비건’과 함께 13일 공동 모니터링 현장 조사에 나섰다.

방음벽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 가장 먼저 발견된 사체는 어린 물까치였다.

날갯짓을 하다 뽑힌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물까치의 깃털을 주운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패로 인해 소형 산새류로 추정될 뿐 정확한 종을 알 순 없었던 9cm 가량의 새 한 구를 비롯해, 멧비둘기와 집비둘기의 사체가 곧이어 발견됐다.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굳어있던 흰배지빠귀와 까치에게 먹힌 흔적이 있는 되지빠귀도 있었다.

단지 주변에선 풀이 무성해지는 여름철을 맞아 한창 예초 작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작업된 자리 한가운데에서 예초기에 갈려있던 까치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사를 시작한 지 90분 만에 봉투가 수거된 사체로 가득 찼다.

세 곳의 아파트 단지에서만 총 20여구의 새 사체와 충돌흔적을 발견했다.

광산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의 투명 방음벽. 마치 뚫려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새들이 유리창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에 있다.

맹금류를 제외한 대다수의 새는 구조상 눈이 양 옆에 있기 때문에 정면에 있는 물체를 입체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나무나 하늘, 아파트 등 외부 풍경이 투명한 유리에 반사되면서 새들의 눈에는 유리창이 뻥 뚫린 공간으로 보이거나 실제 자연환경처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새의 골격은 비행에 최적화되어있다. 뼈가 얇고 속이 비어있어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사 현장에서 일부가 깨진 채 발견됐던 새의 두개골을 확인해보니 종이 1장 정도에 버금갈 만큼 굉장히 얇은 두께를 갖고 있었다.

새들의 평균 비행 속도는 시속 36km에서 72km. 그 속도로 투명 방음벽에 부딪쳤을 때의 충격은 사람으로 따지면 8층 높이에서 뛰어내렸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새가 두개골이 깨지거나 장기가 터져 숨진다. 운 좋게 살아남아 나무에 올라가더라도 뇌진탕 증상으로 인해 금세 떨어져 죽거나 어깨뼈나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조사 현장에서도 사체 한 구가 방음벽 바로 아래가 아닌 인근의 나무 아래에서 발견됐다. 즉사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뇌진탕으로 인한 죽음으로 추정되는 사례다.

살아서는 인간과 가장 떨어져 있는 종 중 하나가 새지만, 그들이 죽는 곳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날 현장 조사에 참가한 한 활동가는 “한 번도 살아서 본적 없는 종류의 새를 죽은 상태로 처음 보게 된다”며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선 ‘5×10 규칙’에 맞춰 일정 간격의 점을 찍는 방법이 있다. 이는 대부분 조류가 수직 간격 5cm, 수평 간격 10cm 미만의 공간을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미국조류보전협회를 통해 알려진 규칙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2018년부터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저감 캠페인을 시작했다.

광주시도 2020년 4월 광역시 최초로 야생조류충돌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조류충돌 방지테이프를 대상기관에 지원하는 등 ‘조류충돌 저감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조례가 권고에 불가하다는 점과 저감사업 지원 예산의 한계로 인해 환경부 기준에 적합하게 저감조치를 실시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감사업 공모대상으로 선정돼 충돌방지테이프를 부착한 광산구의 한 아파트 방음벽을 살펴봤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면과 맞닿아있는 곳부터 가장 윗부분까지 빈 공간 50㎠ 이내로 스티커가 부착돼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장 아래 칸은 스티커가 부착되지 않은 채 일부 구간만 저감조치가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저감조치의 실효성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동물권단체 ‘성난비건’의 대표활동가 희복은 “이미 시공이 끝난 곳에 충돌방지 테이프를 부착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시공단계에서부터 미리 저감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글·사진 =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