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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몸과 마음이 아픈가요, 당장 글을 써 보세요
2023년 06월 02일(금) 15:00
‘내면 여행’을 주제로 독자들과 북 토크를 하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작가 페이스북>
“제가 죽지 않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 주세요. 작가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난 2016년 ‘제3인류’ 연작을 완간한 기념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 일이다. 학교 강연을 마친 작가에게 교장이 삶을 포기하려는 우등생 여학생을 설득해달라고 간청했다. 작가는 ‘어떤 말을 해야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학업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는 한국 여학생의 마음을 어렵사리 돌려 세운 작가는 말한다.

“그날 새삼스럽게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 묘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내 잘못된 단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부를까 봐 솔직히 무척 두렵고 떨렸었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다. 22장의 타로 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버지가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다섯 살 때부터 원고를 마무리하는 예순 살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작품 창작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을 통해 데뷔작 ‘개미’를 쓰게 된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는 타고난 글쟁이다. 8살 때 “나는 수벼룩 아빠와 암벼룩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벼룩이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벼룩의 추억’을 썼다. 학교 작문과제로 사람의 발에서 머리꼭대기에 이르는 벼룩의 대장정을 벼룩의 일인칭 시점으로 쓴 첫 단편소설이었다.

작가는 고등학생때 ‘개미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10장짜리 이야기를 완성했고, 국립 고등언론학교 재학 때에는 욕조 안에 개미집을 들여놓고 개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특히 21살 때에는 아프리카 서부 코트디부아르로 가서 ‘마낭개미’의 생태를 생생하게 취재하기도 했다. 그러한 축적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개미’를 120여 차례 개작하고, 수많은 출판사 거절을 당한 끝에 30살에 데뷔할 수 있었다. 작가가 12년 동안 잉태하고 있었던 ‘알’이 비로소 깨어난 것이다.

작가는 ‘루틴’한 일상도 독자들에게 가감없이 공개한다. 오전 7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체조와 명상을 한 후 집근처 카페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글을 쓴다. 그러한 결과물을 모아 매년 10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개미’를 비롯해 ‘타나토노트’, ‘신(神)’, ‘파피용’, ’제3인류’, ‘고양이’ 등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작가는 ‘개미’ 출간 후 스스로 ‘글쓰기 치료’ 효과를 경험했다고 얘기한다.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초보작가들에게 ‘Writer‘가 아닌 ’Author’가 될 것을 주문하며 “내가 쓴 글이 독자의 의식을 드높일 수 있다면, 고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하고 가슴벅찬 일 아니겠나”라고 말한다. 그의 인생은 소설적이다. 한국에서 하나의 브랜드, 문화현상이 돼버린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앞으로 어떠한 독창적인 작품들을 쓸까, 무척이나 궁금하다.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다짐은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준다.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어머니가 겪었던 이 병은 집안 내력이긴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는 한 계속 쓸 생각이다. 내 삶의 소설이 결말에 이르러 이 책의 첫 문장처럼 ‘다 끝났어. 넌 죽은 목숨이야’하고 끝을 알려 줄 때까지.”

<열린책들·1만88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