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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광주 부시장의 ‘5·18 술판’ - 유연재 사회부 기자
2023년 05월 23일(화) 20:40
광주지역 기자들은 매년 5월 17일 저녁식사를 할 때면 약간의 ‘음복’을 하는 전통이 있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칼에 스러진 영령들의 희생을 기리고, 43년이 지나도록 매듭짓지 못한 진상규명에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5·18민중항쟁 전야제가 열린 지난 17일, 일을 마친 뒤 광주시 동구 금남로 인근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 왁자지껄하게 술을 즐기던 기자들도 이날만큼은 5·18을 취재하는 광주 언론인으로서 무게감을 느끼며 담담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음복을 할 때도 서로 술잔을 부딪치지 않았다.

이날 식당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5·18 관계자들이 잇따라 찾아왔다. 위르겐 힌츠페터를 도와 5·18 실상을 세계에 알린 ‘택시운전사’ 김사복씨 아들 김승필씨,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한 ‘민주경찰’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씨, 계엄군에게 폭행을 당한 부상자와 하나뿐인 형제를 잃은 유가족 등 삼삼오오 모여 서로 위로를 나눴다. 한 부상자는 “또 오월이 왔는데 무엇 하나 매듭지은 게 없다”며 “매년 이날이 되면 가슴 한 켠이 먹먹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같은 날 동구 불로동의 한 식당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술자리가 있었다.

김광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을 비롯한 남녀 10여 명이 17일 오후 7시 30분께 이곳에서 소주·맥주 등 30여 병을 마시며 술판을 벌인 것이다. 참석자들이 “김광진, 김광진”을 연호하는 소리가 식당 바깥까지 울릴 정도로 법석이었던 터라 식당 주인이 핀잔을 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김 부시장은 식비와 술값 등 44만여원을 법인카드로 계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5·18 추모 주간이 되면 광주시는 상주가 된다. 더구나 김 부시장은 광주시 정무직 중 최상위에 있는 고위공직자다. 5·18 피해자들이 43년째 낫지 않는 상처를 호소하고 있는데, 상주가 술주정을 부리는 공무원들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술판을 주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납득이 안된다. 하물며 문화·관광 등의 분야를 총괄하는 부시장이 전야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술자리를 즐겼다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 부시장의 ‘술판 논란’은 지난 2000년 발생한 이른바 ‘새천년NHK 단란주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 5월 17일 5·18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광주시 동구 불로동의 ‘새천년NHK’ 유흥주점에서 술판을 벌인 사건이다. 이들은 술에 취해 말다툼을 벌이는 등 추태를 부려 지탄을 받았다. ‘오월 영령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는 평가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났지만 광주의 아픔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5·18 진상규명은커녕 피해자 보상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지금도 5·18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한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광주를 대표한다는 고위공직자가 5·18 추모 주간이 시작되자마자 술판을 벌였다니, 젯밥이 아까운 심정이다.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