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아리랑과 욱일기- 김목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장
2022년 11월 28일(월) 00:45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가 무엇이오?’ 외국 여행길에서 누가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여러 해 전 중국 쪽에서 두만강을 따라 여행할 때였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노래 한 곡 불러 보시오’라는 권유에 서슴없이 부른 노래가 ‘선구자’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유민과 독립군들이 불렀을 거라 여기고 비장한 심정으로 ‘일송정 푸른 솔’로 시작해 ‘말 달리는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까지 잘 마무리했다.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만든 이 ‘선구자’가 일제와 만주족을 위한 노래이며 작사자 윤해영과 작곡가 조두남이 친일파였다는 것을 알고 절로 낯이 붉어졌다. 모르고 불렀지만, 몰랐다는 것까지도 두고두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때 왜 ‘아리랑’을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아리랑은 누구나 쉽게, 함께 어울려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경기 아리랑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를 비롯하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의 정선아리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시구 날 넘겨 주소’의 밀양아리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의 진도아리랑, 이외에도 독립군 아리랑, 뗏목아리랑, 종두아리랑, 한글아리랑, 남도아리랑, 해주아리랑, 꿈의 아리랑, 연변아리랑 등 지역별, 시대별로 불리는 아리랑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다.

하지만 요즈음 시대의 흐름인지, 아리랑을 부를 기회나 자리가 줄어들었다. 여가 문화·놀이 문화가 바뀌고 모듬살이도 과거와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더 세월이 흐르면 민속 공연장에서나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아리랑은 언제부터 불렀을까? ‘아리랑’의 유래가 ①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이다. ②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사람들이 반가운 말보다 괴로운 말만 들으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농’이다. ③ 밀양 영남루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다. ④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 부인을 찬미했다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는 아니다.

또 아리(亞里)는 ‘하늘나라 마을’이며 ‘아름답다, 곱다, 크다’의 뜻이다. 우리 말 아리따운(아리+다운)이 그 흔적이다. 몽골어의 아리(亞里)는 ‘성스럽다, 깨끗하다’의 뜻이다. ‘랑’은 ‘낭군, 님’이니 아리랑은 ‘성스러운 하느님’이다. 그리고 ‘아라리요’는 ‘알아라’이니 ‘성스러운 하느님을 알자, 잘 모시자’는 말이라고도 한다.

우리 한(韓) 민족은 환인, 환웅, 단군 시대로 이어지는 일만 년의 역사를 가진 천손족, 배달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 믿음은 일제강점기 같은 힘든 시기에 우리 민족을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또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하느님을 뜻하는 언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리랑은 환웅 시대인 배달국(B.C 3897~2333년) 시절부터 단군 시대인 고조선(B.C 2333~238년)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어찌 됐든 괴로울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불렀던 노래, 아리랑은 오랜 세월 전해오는 민요를 넘어 우리 민족,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애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임이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는 이별의 아픔이 서린 ‘애환의 고개’가 아니다. 하느님을, 조국을, 조상을, 고향을, 사랑하는 임을, 자신을 잊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희망의 고개’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11월 6일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기념 국제 관함식에서 우리 해군이 욱일기에 경례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욱일기는 일제 식민지 침략의 상징이자 전범기이다. 그 욱일기에 경례도 하는데, 노래 선구자를 부르는 게 어찌 부끄럽고 나아가서 함께 일본 군가도 부르지 않을까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