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축구사의 문화재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2년 11월 21일(월) 00:30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은 대한민국이 최초로 국제대회 정상에 올라 획득한 전리품이다. 이 대회는 1956년 9월 홍콩에서 한국, 홍콩, 이스라엘, 베트남 4개 팀이 참가해 열렸다. 한국은 풀 리그로 치러진 경기에서 2승 1무(승점 5점)로 정상에 올랐고 2위는 이스라엘, 3위는 홍콩이 차지했다. 한국은 1960년 제2회 서울 대회에서도 우승컵을 차지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안컵 우승을 계기로 새 집행부를 꾸리고 조직을 정비해 한국 축구의 기틀을 다졌다.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의 토대가 된 축구 행정이 비로소 시작됐다.

아시안컵에는 궁핍했던 시대상도 새겨져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1954년 한국은행에서 1만 4060달러를 빌려 싱가포르 원정을 다녀왔다. 아시안컵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외상 원정 훈련’은 결국 사달이 났다. 재정이 열악했던 축구협회가 국책은행 부채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체육회 총재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대회 참가 재가를 미뤄 필리핀 마닐라 원정 1차 예선전이 무산될 뻔했다.

한국 축구사를 대표하는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은 실제 선수들이 들어 올린 우승컵이 아님에도 2012년 국가 등록 문화재(493호)가 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회 대회를 비롯해 초창기 우승국에게 우승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은(銀)으로 실물보다 작은 우승컵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그중 유일하게 남은 게 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대한체육회 한국체육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한국 축구가 오늘부터 월드컵 16강 대장정에 돌입했다. 선수들의 축구화와 유니폼 등은 세월이 흐르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시아 축구대회 우승컵처럼. 지금은 단순한 스포츠 용품이지만 수십 년 세월이 지나면 문화재로 가치가 전환된다. 국가적으로 스포츠 유산을 챙겨야 하는 이유다. 광주·전남 체육회도 스포츠 자산을 찾아내고 보존할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의 땀이 배인 물품을 바탕으로 지역 스포츠 역사를 조망하고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공간 하나쯤 가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