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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투명한 언어의 향연
광주 출신 한영숙 시인, 시집 ‘허공 층층’ 펴내
2022년 09월 28일(수) 21:40
“방향을 잃고 공터 땅바닥에 음표를 그린다. 음소거된 노래들이 꽃구름 피운다. 살면서 까마득히 사라질 때까지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는지, 이제 마음의 길을 피웠으면 좋겠다.”

맑고 투명한 언어의 향연.

광주 출신 한영숙 시인의 시는 그렇게 집약할 수 있겠다. 이번에 펴낸 시집 ‘허공 층층’(상상인)에서는 어둠의 빛은 스며있지 않다.

조선의 시인이 “그녀의 시어는 빛에서 차용한 것이 많아서인지 슬픔조차 맑다”고 평한 것에서 보듯, 시인은 헛된 수사를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언어를 맞춤하듯 그 자리에 꿰어 맞춘다. 인위적인 꿰어 맞춤이 아닌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그 언어가 있어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배롱나무’, ‘꽃구름 공터’, ‘강물의 실루엣’, ‘부추꽃’, ‘살구나무’ 등 모두 60여 편의 시들은 일상의 자연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적정한 감정 선을 유지한다.

“허공 층층 꽃망울이 머뭇거린다/ 쪽문을 두르리던 매화가/ 묵은 얼굴들의 매듭을 푸는지/ 한두 송이씩 흔들린다/ 배수진을 친 꽃샘추위에도/ 발 끝에 걸려 있는 하얀 겹의 시간/ 흔적은 그리움으로 남아/ 잊히지 않는 얼굴들/ 머뭇거림이 당신을 놓치면/ 나는 내내 머뭇거림을 붙들고”

위 시 ‘머뭇거리는’은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 순간의 시간을 초점화하고 있다. 매화는 어쩌면 단순한 꽃이 아닌 화자가 지향하고 있는 어떤 대상이나 관념의 세상일 수도 있다. 머뭇거림은 그러나 고통스럽거나 애닯지 않다. 또 다른 삶의 여정을 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조선의 시인은 추천 글에서 “어떤 사실을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 스며 들때까지 기다린다. 윤리적 주체로서 처해있는 나를 먼저 관찰한다. 내면에 쌓인 시간과 기억의 파편들이 현실과 불화를 원치 않는 허공 층층에서 시적 진실을 목도할 수 있다”고 평한다.

한편 한영숙 시인은 문예마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광주문인협회, 열린시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