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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의 몰락, 고층아파트가 대안인가] 도시 정체성 담은 구도심 사라진다면 광주도 없다
도시는 정치·행정·경제 중심
다양한 역사·자원, ‘정체성’ 만들어
고층 주거단지로 변화된 구도심
건축물 높이 제한 등 정비 필요
공공재정 집중 투자 불균형 해소
ACC 주변 시너지 효과 낼수 있는
2022년 09월 27일(화) 23:00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보봉주택단지. 공공이 조성한 주택단지로, 차량의 진입은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으며, 에너지 자립, 다자녀 등 입주 조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광주 구도심 단독주택지역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도시에서 사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태어난 곳이어서, 진학·취직이나 결혼을 해서, 뜻밖의 우연한 일로, 그 도시의 시민이 된다. 시간이 지나며 계속 살아가기도 하고, 또 비슷한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도시는 자연 생태, 지리적 여건, 주변 지형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나기도 하고, 철도의 정차, 도로의 교차, 거점시설 설치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경우도 있다. 또 고대에는 착취를 위해 식민도시를 만들기도 했고, 최근 들어서는 인구 분산, 공공기관 이전, 산업단지 배후 등 특정한 목적을 갖고 찍어내듯 신도시가 제조되고 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이며,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가 집적돼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고, 창의적인 사고·행동을 융·복합하는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성과들을 만들어낸다. 사람만이 아니라 자본, 물자 등이 몰리고, 상업·편의·문화·유희시설들이 즐비하며, 첨단과학·금융·유통 등의 관련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 오픈스페이스, 수변 공간, 공공청사 등이 잘 배치된 경우 시민들의 만족도는 더 높아진다.

도시는 각각 다른 경관을 갖고 있다. 지형, 역사 및 전통, 거주 집단의 특성, 자원·기술의 유무, 운영 체계 등에서의 차이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도 없고, 하나의 건축물이나 시설로 대표할 수도 없는 정체성은 자긍심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머물러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체성은 도시를 계획하고 정비·재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핵심요소다.

도시에 사람들이 집적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편의성에 있다. 일할 장소, 쇼핑할 장소, 즐길 장소, 머무를 장소, 쉬어갈 장소 등을 농촌보다 훨씬 편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승용차 등 이동수단 역시 다양하다. 여기에 탑, 미술관·박물관, 분수대, 광장, 공공예술 등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면 관광객까지 끌어 모을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도시로 부상할 수 있다.

미국 뉴욕의 도심 한 가운데 광장에서 열리는 그린마켓. 뉴욕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된 야채, 과일 등이 도시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매된다. 도심은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다양성, 정체성, 편의성을 점차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광주를 정비·재생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광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태 자리이자 도시 성장·발전의 시작점인 구도심이 외곽 택지지구보다 더 높은 아파트 단지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심상업지역, 즉 일하고, 쇼핑하고, 즐기며, 머무는 장소가 외지인을 배척하는 것은 물론 무등산을 완전히 가리는 30~40층 주거단지로 탈바꿈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실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公共)은 광주 구도심을 철저히 외면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려 말 조선 초 광주인들은 광주천 중류, 무등산을 등지고 있는 평지에 읍성을 지어 중심을 잡았다. 이어 광주천변에 시장 두 곳(큰 장, 작은 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광주 읍 시가지(도심)가 형성됐다. 일제강점기, 이 읍성이 무너지면서 도심이 서서히 넓어졌고, 도시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광주는 호남의 중심도시로 성장해나갔다. 근대식 도로, 철도, 건축물, 공원 등은 일제에 의해 계획·실현됐으며, 최초의 도시계획 역시 일제가 만들었다.

해방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외곽 택지가 ‘촉진’ 개발되면서 도심은 ‘구도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공은 저렴한 토지를 수용해 신시가지를 조성하는데 오로지 행·재정력을 쏟아 부었다. 반듯하고 넓은 도로, 인접한 공원,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문화·체육시설, 대규모 관공서, 무엇보다도 단독주택과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하고 안전한 아파트 단지 등이 신시가지에 들어섰다. LH, 광주도시공사 등은 개발된 택지를 건설업체에, 건설업체는 아파트와 상가를 시민·외지인에게 분양해 천문학적 수익을 가져갔다.

구도심은 50년 이상 방치되면서 기반시설이 미흡해 불편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자동차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노후하고 불편한 단독주택지역에는 빈집이 속속 생겨나 이제는 ‘사람 없는 동네’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정부·지자체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재생’을 하겠다며 재정을 투입하고, 한편으로는 건설업체, 토지소유주에게 혜택을 더 몰아주는 고층 아파트로의 정비를 계속 추진했다.

실질적인 주거의 질 개선 없는 ‘말로만 재생’은 거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조합원 아파트를 분양받아 ‘프리미엄’을 받고 팔 수 있는 재개발에 대한 그들의 선호만 더 뚜렷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충장로 인근은 물론 금남로까지 아파트가 장악하면서 구도심에 그나마 남아있는 상업기능이 절멸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광주 구도심에 들어섰고, 조만간 들어설 예정인 고층 아파트들은 ‘아파트 무덤’이라는 미래 광주의 암울한 상징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10년 이상 실수요에 대한 아무런 조사·분석 없이 투기세력을 염두에 둔 무계획적인 공급의 결과는 광주의 경관·정체성·개성·매력의 상실이었다. 도시공간에서 어떤 이는 공공의 인·허가에 의해 엄청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무등산 조망, 녹지 및 공공공간에서의 휴식 등 광주시민 모두가 누려야 할 가치가 사라지고, 구도심 공간의 질은 더 하락해 거주·유동인구는 계속 감소중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가톨릭 중시, 중상주의 정책, 식민지 개척, 산업혁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다양한 도시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도시 미화 운동’을 시작으로 대규모 공원 시스템을 구축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도시는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 속에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는 데만 급급해 ‘계획 없는 개발’을 반복했다. 설사 ‘계획’이 있더라도 ‘이권’ 앞에 수없이 변경돼 너덜너덜해졌다. 또 개발에 따른 수익을 얻으려는 자들의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신도시, 택지지구 등도 유사한 설계로 조성됐으며, 구도심에 그나마 남아있던 유산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갔다.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고, 역사문화 자산을 유지·보존하며, 자신의 주거지에 애정을 갖고 계속 살아가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일본 구마모토시의 주거지 전경.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은 거의 없다. 도로는 기본적으로 공공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차량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차고지를 증명해야 하는 제도가 자동차 없는 골목길을 만들어냈다.
광주의 구도심을 몰락하도록, 시멘트 덩어리로만 채워지도록, 사람은 사라지고 비어있는 노후주택만 남아있도록 해야 되는 것인가. 가장 급한 것은 도시 공간의 사유화를 막아 소수가 개발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구도심에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구도심 전체를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어 개별 인·허가를 통한 고층 아파트 및 대규모 시설사업의 개발수익을 철저히 사전 검증해야 한다. 인간적인 척도로 구도심에 적정한 건축물 높이를 정하고, 이를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두 번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설, 장소를 서둘러 구도심에 조성해야 한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미술관, 박물관, 역사관, 체험관 등을 도보로 연결하고, 빈집과 공터를 작은 광장이나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안겨줘야 한다. 또 차도를 좁혀 자동차를 불편하게 하고 넓게 보도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구도심을 재편해야 한다. 구도심의 거리에서 공연, 전시, 판매(카페) 등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을 권장한다면 금상첨화다.

세 번째, 구도심을 광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 일제강점기, 1960년대 이전, 1980년대 이전까지 시대를 구분해 건축물이나 시설들을 파악하고, 이들 가운데 공공이 매입 가능한 지를 검토한 후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시대 순례길’을 조성했으면 한다. 광주인만이 아니라 외지인들도 찾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역사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네 번째, 광주 구도심에 남아있는 단독주택지역에 대해 보다 세심하고 폭넓은 지원으로 현재의 거주민이 계속 거주하고,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을 바라는 이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시정책은 무엇보다 거주민의 계속 거주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공원·도로·하수 등 기반시설을 신속히 정비하면서 금융·세제 지원을 통해 단독주택과 3~4층의 소규모 연립주택으로 구성되는 광주 주거지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승용차 없는 거리, 자동차 없는 날 등을 선정한 뒤 바자회, 농수축산물 직거래장터, 물물교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심에서 실시해야 한다. 또 자동차의 구도심 진입과 주차를 최소한으로 유지해 자동차가 앗아갔던 구도심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일정기간이 지난 빈집 철거 및 공터를 관련 법률 및 조례 개정을 통해 공공주차장으로 만들어 골목길의 기능을 되살리고, 구도심의 주요도로는 대중교통 전용공간으로 묶어 도시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광주의 구도심을 ‘인본도시’의 시작점으로 삼고 이를 충실히 실현해야 하며, 중세와 근대 유럽이나 미국이 도시에서 그렇게 했었듯이 공공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공공이 구도심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이 상업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도심이 없으면 광주도 없다.





윤현석

광주일보 정치부 부국장

전남대 도시 및 지역개발학 박사

전남대 지역개발연구소 위촉연구원

도시사학회·한국지역개발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