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철도, 오래된 도심으로 돌아오라] 철도 기반 지역문화권 형성…원·구도심 보행체계 구축을
도시개발 기회 제공했지만
고속철도 건설·철도역 이전으로
중·소도시, 원·구도심 쇠퇴
경제·사회적 수준 격차로 이어져
중앙역·공원·문화시설 연계
‘해리포터’ 도시 에딘버러 눈길
2022년 08월 23일(화) 22:00
에딘버러의 인공호수에 조성된 중앙역(멀리 숲 뒤에 다리와 함께 철도역 지붕)과 인접한 프린스가든.
도시의 변화, 즉 새로운 중심부의 등장과 도시의 확장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온 기술의 혁신이 이끌어 왔다. 특히 인간과 물자를 옮기는 철도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이러한 변화를 지배했다.

영국의 올란도 파이지스 교수는 철도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해안과 내륙 간에 물산의 이동을 통한 시장의 성장 그리고 엘리트 집단의 이동을 통한 도시의 문화·예술거점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철도가 유럽 대륙을 연결하며 무엇보다 ‘유럽인’과 ‘유럽문화’라는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했음을 강조한다. 결국 철도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도시 성장의 DNA인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해주고, 그 주변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모아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는 철도를 통해 어떠한 변화를 겪어 왔을까. 읍성 중심의 우리 도시가 모던 도시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은 철도가 개통된 20세기 초이다. 읍성 밖 습지의 중앙역에서 시작된 중앙로는 중앙시장을 지나 그 중심에 은행과 우체국을 두었으며 행정시설과 함께 백화점, 극장, 호텔이 상업중심부를 완성했다. 읍성이 해체된 자리에는 신작로가 놓여졌고 그 주변으로 학교, 교회·성당, 병원이 현재 원·구도심을 완성했다. 중앙역의 배후에는 창고와 공장이 지역의 원자재를 모아 상품을 생산하며 일자리를 쏟아내었다.

한국의 철도는 한국전쟁 이후 최근까지도 국토의 중심 교통·운송체계로서 고속도로보다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저평가되어 왔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고속도로 중심의 국토체계와 자동차 중심의 도시개발을 추구해온 정부의 산업거점과 도시주택 정책의 결과이다.

철도가 이 시대의 최적의 교통수단으로 넓게 평가되는 이유는 탁월한 친환경 성능덕이다. 최근 발표된 유럽공동체 산하 유럽환경청의 교통환경보고서 2020에 따르면, 유럽 대륙에서 철도는 보행과 자전거를 제외하면 압도적으로 친환경적이며 1인 운전차는 최악으로 비교되었다. 유럽공동체에서 2018년 기준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1/4은 교통운송에서 배출되며, 도로(72%), 해상(14%), 항공(13%), 철도(0.4%)에 기인한다.

도시개발의 관점에서 고속도로는 개발을 도로를 따라 선형으로 확장시키지만, 철도는 자연 경사지의 개발을 제한하고 철도역을 중심으로 개발의 입지와 밀도를 집중시킬 수 있다. 이에 도시권에서 철도는 철도역 보행권을 조성하고 압축된 도심생활권을 유도해왔다. 또한 철도는 내륙의 발원지에서 해안까지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범람이 잦은 우리 수계에서 도로보다 상대적으로 적합하다. 특히 내륙에서 쇠퇴한 중·소 도시에 유입되는 공장들은 도로를 따라 수원의 오염을 우선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옛 펜철도역(Pennsylvania Station, 1910~1963),
◇철도역 이전과 원·구도심의 쇠퇴

이러한 철도는 다음 세 가지의 관점으로 현재 원·구도심의 쇠퇴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첫째, 철도는 지역문화권의 성장에 기여했으나, 평지를 선호하는 특성으로 자연지형을 해체하며 물리적인 정체성을 변화시켜 왔다. 철로는 공사의 난이도와 운행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평지와 습지를 메우고 하천의 형태를 변화시키며 수계와 평행하게 조성되어 왔다. 이에 철도는 하천의 범람을 막는 둑방의 역할을 해왔으며, 인접한 구릉의 토사로 철도를 따라 대규모의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결국 철도의 큰 경로는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며 수계 기반의 지역문화권을 만들어주지만, 철도역 주변에는 필수적인 수계와 구릉의 변화를 유발하며 물리적인 정체성의 과제를 남겨왔다.

해리포터의 도시인 에딘버러의 중앙역(1842)은 도성의 해자로서 15세기에 건설된 호수를 메꾸고 그 위에 건설되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중앙역은 가파른 언덕의 도성을 중심으로 급격한 고저차의 도시지형을 한 눈에 확인하는 진입부이며, 인접한 경사지의 도시공원을 따라 왕립미술원과 국립미술관으로 이어져 도시 관문을 완성한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철도역 앞의 도시경관은 ‘해리포터’ 이야기의 시작점이 왜 철도역인가의 대답을 준다. 철도역은 평지 위에 스파게티 다발처럼 생긴 철도선을 묶어 한곳으로 집중시킨 그 도시의 최대 시설로서, 주변의 습지와 수변공간을 이용한 도시공원과 문화·예술시설과 함께 도시의 중심 관문이 된다.

둘째, 철도역의 전면 구역과 배후 구역은 서로 다른 도심으로서 분리되어 성장해왔다. 철도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지만, 정작 도시를 관통하며 양분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전면 구역에는 지역민과 방문인의 진입부이며 대중교통 연결시설과 함께 상업구역이, 배후에는 창고와 공장이 성장해왔다. 철도가 놓이기 이전 시대의 전통 도시의 얼굴이 신전과 성당이었다면, 모던 도시의 얼굴은 시민의 가치를 상징화한 건축양식을 가진 철도역으로 결정되었다.

도시의 관문이며 도시경관의 중심부로서 철도역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뉴욕시의 펜철도역의 새로운 얼굴로 최근 개장된 모이니한철도관에서 확인된다. 고전적인 건축양식의 펜철도역은 1960년대에 철도사업의 쇠퇴와 함께 철거되었고, 철도역 기능은 실내경기장과 공연시설의 매디슨스퀘어가든의 지하로 이전 되어 일종의 지하철역이 되었다. 시민들은 철도역의 해체 직후부터 재건축을 논의했고, 이듬해 뉴욕시의 의미 있는 건물과 장소를 보호하는 건축역사보전법의 입법과 랜드마크보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년 초 메디슨스퀘어가든에 인접한 미국우정국 뉴욕관이 펜철도역의 입구로 개관했다.

우리의 중앙역은 예측 가능한 유동인구를 규칙적으로 집중시키며 인접한 중앙시장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중앙역 상권’을 형성하고 중앙로를 따라 현재 원·구도심의 거대한 보행체계를 통해 공공기능과 금융구역, 극장, 음악당, 미수관 등의 문화·예술시설을 묶어주며 모던 도시의 경관을 완성해왔다. 철도역 후면부에는 철도시설과 창고, 제분소, 제사방직공장이 전기발전소 주변에 입지했다. 이러한 공장과 창고는 분기선을 갖춘 대전역, 대구역, 광주역에서 빠르게 성장했으며, 최근 대단지 아파트로 재개발되어 왔다. 하지만 후면부의 주거재개발은 전면부의 공공시설과 상업·문화거점과는 분리되어 있으며, 그 개발사업의 수익과 영향력이 전면부의 오래된 건축물 보전과 상업활성화에 직접 기여되는 도시정책들이 시급하다.

펜철도역의 새로운 얼굴로 최근 개장된 뉴욕시의 모히니한철도관(Moynihan TrainHall, 2021) Garrett Giegler, 2021
◇슈투트가르트, 도쿄 등 철도역 활용

셋째, 도시의 성장과 함께 진행되어 온 철도 기능의 확장과 여객·화물역의 교외지 이전이다. 이 과정에서 여객운송 기능은 외곽의 화물역으로 확장했으며, 이에 따라 화물역은 다시 외곽으로 이전해왔다. 또한 도시들 간의 경쟁적인 고속철도 건설과 곡선 철도구간의 직선화가 진행되면서, 고속철도역이 기존 원·구도심의 철도역 기능을 대신하며 교외 신도심 개발을 유도해왔다. 그 결과는 고속철도역의 신도심과 옛 철도역의 원·구도심 간의 의도치 않은 경쟁이다.

경주역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세 번 이전하며 신축했고, 고속철도역인 신경주역이 약 10여 년간의 노선 결정과정을 통해서 경주IC 주변에 개통했다. 이러한 결과로 경주는 경주역이 없는 도시가 되었고, 작년 폐역된 경주역 앞의 시장과 중앙로의 상권은 쇠퇴를 가속해왔다. 경주의 불편한 상대인 교토는 현재까지 네 번의 교토역을 건축했으나 첫 자리에서 고속철도를 흡수하며 남문을 대신한 관문의 장소성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왜 철도역을 자주 옮기는가.’ 나는 한국 도시의 최근 백 년 역사를 공공이 주도해온 도시사업인 ‘이전’이라는 단어로 요약해왔다. 여기서 철도역은 학교와 함께 도시개발자와 정책결정자에게 유혹의 우선 대상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속철도의 개통이라는 명분 하에 ‘옛 철도역과 주변 재개발’ 그리고 ‘외곽에 새 철도역과 주변 대규모 개발’이라는 두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즈음 도시와 주변 시골의 통합을 장려하기 위한 도농통합법은 원·구도심의 주요 시설들의 외곽 이전을 부추겼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이러한 상황은 ‘철도역을 이전하면 도시는 쇠퇴하고, 학교를 이전하면 동네는 해체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특히 철도역의 이전은 도시의 시작점인 원·구도심의 중심 상권을 해체하는 사업이다.

자동차의 도시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1953년 도시중심부를 관통하는 중심 도로를 독일의 첫 번째 보행도로로 전환시키고 동쪽의 중앙역(1922)과 서쪽의 교통환승센터를 직접 연결하는 보행체계를 조성했다. 이 도로를 따라 마켓홀과 시청이 같은 장소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지킨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최근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를 통해 중앙역을 이전하지 않고 지하에 철로를 90도 틀어 고속철도역을 건설하고 배후 공장지를 글로벌 오피스구역으로 재개발중이다.

철도는 신도심을 형성하며 도시의 성장을 유도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개발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국토를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며 다수의 중·소 도시들의 쇠퇴를 보았고, 철도역의 이전을 통해 원·구도심의 쇠퇴를 가속화했고, 민자철도역사사업으로 백화점 뒤에 숨어 도시경관에서 사라진 중앙역을 얻었다. 여기에 철도는 도시를 분단시키고, 나뉘어진 구역들은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 이는 대중교통의 공공투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 도시에서 가중될 것이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철도 기반의 지역문화권’과 ‘철도역과 맞물려있는 원·구도심 보행체계의 구축’을 제안한다. 특히 철도역과 원·구도심을 나누고 있는 8~10차선의 차로는 좁혀지고 육교와 지하계단은 넓은 횡단보도로 대체되어야 한다.



한 광 야

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도시설계전공 교수

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현 역사도시서울위원회 위원

전 서울 해방촌 도시재생 총괄계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