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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제주 정착해 시집·산문집 동시에 펴낸 문태준 시인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
제주살이 2년 새 집 짓고 밭담 쌓고
흙과 자연 속에서 생생한 시어 찾아
최근 여덟 번째 시집 ‘아침은 생각…’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펴내
“사람과 어울려서 살려는 생각
2022년 08월 22일(월) 22:00
문태준 시인은 ‘제2의 자연’인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서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최근 ‘제3회 박인환 상’(시부문)을 수상했다.
문태준(52) 시인은 2년 전 오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이사했다. 아내의 태자리인 제주도 애월읍 장전리 생가 터에 새 집을 짓고 밭담을 새로 쌓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흙과 자연 속에서 노동하는 동안 생생한 시어(詩語)들이 찾아왔다. 최근 여덟 번째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창비)와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마음의 숲)를 펴내고, ‘제3회 박인환 상(시 부문)을 수상한 시인을 제주 애월읍 문정헌(文庭軒)에서 만났다.

◇밭담 쌓고 풀 뽑는 노동 속에서 찾아오는 시어=흙과 함께 하는 노동. 제주살이 2년을 거치며 시인의 얼굴은 검게 탔고, 손은 투박해졌다. 시인은 지난 2020년 8월, 오랜 시간 생활했던 서울을 떠나 아내의 고향인 제주도 애월읍 장전리로 내려왔다. 아내의 태자리인 폐가를 헐고 새집을 지었다. ‘현대시학’ 주간을 역임했던 고(故) 정진규(1939~2017) 시인이 고향 김천 집에 지어주었던 ‘문정헌’(文庭軒)이라는 당호(堂號)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시인은 낮에는 제주 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일을 하고, 퇴근하면 묵혔던 밭의 크고 작은 돌들을 옮겨 밭가에 밭담을 쌓았다. 돌을 제자리에 앉혀 경계와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밭담을 쌓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또 텃밭을 일구며 잡초를 뽑고,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문정헌’과 카페 ‘오롬마르’ 주변에는 멀구슬나무와 올리브 나무, 호주 티 트리, 꾸지뽕나무, 한라봉, 동백나무, 은목서, 금목서가 자리하고 있다. 카페 내부에서 투명 유리창으로 내다보면 검은 빛깔 밭담을 배경으로 바람결에 일렁이는 나무와 풀들의 율동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문태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
시인은 유년기부터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경북 김천의 자연을 ‘첫 번째 자연’, 만 2년을 생활한 제주의 자연을 ‘두 번째 자연’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오이와 토마토 등 작물을 직접 기르는 일이 서툴지만 동네 이웃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제주에 내려와 쓴 시들이 이번 신작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에 절반 넘게 들어갔다.

“아침은 매일매일 생각한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를/ 조각달이 물러가기를 충분히 기다렸는지를/ 시간의 기관사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침은 생각한다…”(‘아침은 생각한다’ 중)

신작 시집에는 표제작 ‘아침은 생각한다’을 비롯해 ‘돌과 돌 그림자’, ‘입석’, ‘선래(善來)’ 등 꽃과 나무, 풀, 돌, 곤충 등 자연에서 얻은 소재의 시가 많다. ‘별미’와 ‘항아리’, ‘종소리’ 등은 ‘생명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음력 10월이 다 가도록 가지에 매달려있다 떨어진 꾸지뽕 열매를 줍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시 ‘별미’(別味)에 대해 “생래적으로 얻게 된 생태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는 문태준의 시는 기후환경의 위기를 실감하면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속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생각에서 시 출발=시인은 신작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저자의 말에서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라며 새로운 마음과 첫 문장을 준 제주의 이웃과 사물에 대해 열거한다. 산문집에는 50여 편의 글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나눠 실려있다. 자연과 불교, 예술을 통해 문제의식을 던지는 시인의 산문 한편 한편은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 와 살면서 새로운 마음을 얻었다. 돌밭과 해안과 오름과 숲은 그들의 고유한 빛을 내게 비춰주었다. 해녀와 대양(大洋)의 어부, 귤밭의 농부, 산인(山人), 이웃도 나를 비춰주었다. 은빛 비행기, 오가는 여객선, 섬들도 문장을 주었다.”

시인은 오래전부터 시 창작과 함께 일간지와 사보 등 여러 매체에 산문을 연재해오고 있다. 이번 산문집은 2009년 처음 펴낸 ‘느림보 마음’(마음의숲)과 2019년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숲)에 이은 세 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은 신작 산문집에 실린 ‘시인의 일’에서 시를 짓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내가 시를 짓는 이유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보람을 얻지 못하는지,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는 무엇인지 궁리하는 것이 내 시였으므로 시는 내가 보고 듣고 살던 삶으로부터 비탄처럼 태어났다.”

◇“생명과 불교, 관계에 대한 사유가 내 시의 큰 줄기”=경북 김천 태생인 시인은 고려대 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4년 ‘문예중앙’ 신인 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년)부터 ‘아침은 생각한다’(2022년)까지 모두 8권의 시집을 냈다. 그동안 동서 문학상(2004년), 노작(홍사용) 문학상(2004년), 유심작품상(2005년), 미당문학상(2005년), 소월시문학상(2006년), 목월 문학상(2018년), 정지용 문학상(2019년), 박인환 상(2022년) 등 주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문태준 시인과 소설가 김연수·김중혁 세 작가는 김천에서 학교를 함께 다닌 오랜 벗이다.

시인은 김천 직지사 말사인 용화사를 다니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대학졸업 후 불교방송 PD로 일하면서 큰스님 말씀을 듣고 경전을 읽는 등 폭넓은 불교공부를 하게 됐다. 그의 작품세계 바탕은 ‘생명’과 ‘불교’이다. ‘맨발’과 ‘일륜월륜(日輪月輪)-전혁림의 그림에 부쳐’,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등 많은 작품에 불교적 사유가 담겨있다.

“제 시는 생명과 불교,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라든지 불교가 얘기하는 상의 상관(相依相關), 연기(緣起)에 대한 생각, 관계에 대한 사유… 이런 것들이 제 시의 큰 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7월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용아 박용철 시인 생가에서 ‘위대한 조언을 구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시인.
시인은 등단 이후 30년 가깝게 시를 써왔다. 언제나 새로운 시를 쓰고 싶다. 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문정헌’ 작업실 서가에는 손때 묻은 수첩들이 여러 권 보관돼 있다. 펼쳐보면 짧은 시구가 메모돼 있다. 문득 시구가 떠오를 때 적어놓은 것들이다. 시 창작뿐만 아니라 국내외 ‘좋은 시’를 찾아 신문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정헌’ 마당에서 바라보면 멀리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다도 멀지 않다. 제주에서는 어디서나 사람들 등 뒤에 수평선이 걸린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큰 바다를 볼 수 있다. 내륙에서 자란 그에게 큰 바다는 아직 감당하기 어렵다. 제주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하늘 역시 거칠 것 없이 크고 둥글다.

시인은 ‘두 번째 자연’인 제주에서 흙과 함께 노동하며 어떤 문학적인 변신을 모색할까? 시인의 심성은 제주의 햇살과 바람, 돌…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 시인은 ‘어젯밤에 쓴 시가 제일 좋은 시’라고 믿는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깨어 홀로 앉아 첫 문장을 기다린다. 돌밭에서 돌을 캐듯 시를 캐고, 싸락눈 오듯이 자연속 생생한 시어들이 쏟아지길 바란다.

“좋은 시를 썼을 때 제일 큰 기쁨으로 오는 것 같아요. 좋은 시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 때 선한 작용들을 하지 않겠습니까? 돌밭에서 돌 캐면서 이제 시도 같이 캐는 거죠(웃음). 그래서 큰 욕심은 없는 거죠. 이제 누군가가 시를 주신다면, 이 생명세계가 저한테 짧은 시라도 주시면 잘 받아서 쓰는 거죠. 한기가 느껴지는 찬바람 속에 혼자 서있는데, 싸락눈이 막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숙함 같은 것도 생기고, 사람의 생명존재에 대한 생각도 들고, 우주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특히 여기는 하늘이 크지 않습니까? 하늘을 가리는 게 없으니까 사방에 하늘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시 쓰는 사람에게 그런 느낌은 특별하고 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