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공감력 부족과 실언-박진영 공감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전남대 객원 교수
2022년 08월 08일(월) 01:30
‘이부망천’이란 말을 후세 사람들은 어쩌면 사자성어처럼 사용할지도 모르겠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정치인의 대표적 실언으로 말이다. 이 표현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한 방송국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당시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이 꺼내서 유명해졌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 잘 살다가 이혼 한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갑니다.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그럼 저기 인천 가서 중구나 남구나 이런 쪽으로 갑니다.”

정 대변인은 인천의 실업률, 가계부채, 자살률 등 지표가 나쁜 것을 두고 “이런 지역적인 특성을 빼버리고 이것이 유정복 시장의 개인의 잘못이다? 그건 생각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말을 했다. 부천이나 인천 사람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사는 시청자들은 방송을 듣자마자 바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방송 도중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정 대변인의 말에 분개했을까? 부천·인천이 살기 좋은 곳인데 정 대변인이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에 고민이 단 한 줌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은 결과적으로 부천·인천 사람들을 ‘이혼하거나 망한’ 사람으로 못박은 꼴이 됐다.

정 대변인은 해당 지역 사람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며 공식 사과를 하고, 정치적 짐을 덜어내기 위해 탈당까지 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참패했다.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 재밌는 일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기쁜 일보다 화가 나는 일에 몇 배 더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아담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이렇게 썼다. “친구들이 우리의 우정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그들이 우리의 분개에 동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절반 정도도 안 된다.”

정치인의 실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의 분개에 공감하기는커녕, 분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비난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강릉시 선거관리위원인 대통령의 지인 아들을 대통령실 행정요원으로 채용한 것과 관련해 한 말은 매우 심각한 실언이 아닐 수 없다. ‘사적 채용’이라는 비난이 일자, 권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이더라. (월급을)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다. 한 10만 원 더 받는다. 내가 미안하더라.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강릉 촌놈이.”

최저임금보다 월 10만원 더 받을 뿐인 9급 공무원이라는 하찮은 자리를 주었는데, 그걸 왜 문제 삼느냐는 취지의 반론이었다. 그런데 이는 9급 공무원 시험 또는 그것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 미치는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말이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비난 여론이 더욱 비등했던 이유다. ‘사적 채용’이냐 아니냐는 그 다음 문제로 밀려났다.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하는 말은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 모두에게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은 극히 경계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이 7월 29일 강원도 춘천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한 말은 아슬아슬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진보적 대중 정당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대선 결과를 보면 고소득 고학력자 중 우리 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고, 저소득 저학력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언론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사람들의 투표 성향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이재명 당 대표 후보나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린 사람이 있다면 실점한 것이다.

한때는 정치에서 토론 상대를 논박해 꼼짝 못하게 하는 똑똑함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런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분노나 아픔을 위로하며 힘을 북돋워 줄 줄 아는 능력, 곧 공감력이 결여되면 그런 건 다 소용없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