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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올랜도 보드 지음, 황종민 옮김
손 편지에 담긴 불후의 명작 뒷 이야기
2021년 11월 25일(목) 23:40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샤를로테에게 보낸 편지(왼쪽)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미술문화 제공>
“급진적인 게 단지 이상일 뿐이라면, 네, 저는 급진적입니다. 모든 관점에서 늘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요구합니다. 속담에서는 최선을 바라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고 나무라지만요. 빈곤을 용인하는 사회, 지옥을 용인하는 종교, 전쟁을 용인하는 인류는 제가 보기에 열등한 사회, 종교, 인류와 같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친구에게 쓴 편지 중에서)

위의 편지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친구에게 쓴 편지 가운데 일부분이다. 위고는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편지에서 인간의 역격을 근절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아가 “빈곤을 몰아내고 몽매함을 교화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암흑을 밝히고, 증오를 배척할 것”이라고도 강조한다.

편지만으로도 위고가 견지했던 철학, 작가적 신념 등을 엿볼 수 있다. 민중에 대한 사랑, 불의한 세상을 바꿔보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물론 위고는 훌륭한 편지를 쓰기 위해 위대한 작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의 서신은 그 명성에 맞게 훌륭하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샤를로테에게 보낸 편지(왼쪽)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미술문화 제공>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들의 편지가 책으로 묶였다. 제인 오스틴부터 수전 손택까지 아우르는 편지는 생생한 손 글씨로 써내려간 숨은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이들의 편지를 통해 독자들은 소설에 얽힌 비화, 은밀한 사랑, 창작에 대한 열정 등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작가이자 미술사학자인 마이클 버드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부편집인인 올랜도 보드다.

책에는 작가 94명의 편지 94통이 수록돼 있다. 작가에는 소설가, 시인, 수필가, 극작가 등을 아우르며 편지 목적에 따라 몇 개 장로 분류돼 있다. 등장하는 작가는 언급했듯이 세계적인 문인들이다.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푸르스트,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임스 조이스, 발터 벤야민, 프란츠 카프카, 허먼 멜밀, 기욤 아폴리네트, 사무엘 베케트 등 서구문학을 대표한다.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는 후원금을 유흥에 허비한 적이 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해명을 한다. 비난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인하며 “저는 ‘폭음’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고 낮춘다. 한편으로 “제 머릿속은 자갈로 가득합니다”라고 변명을 하는 등 천재적인 글 솜씨로 상대의 마음을 사려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샤를로테에게 보낸 편지(왼쪽)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미술문화 제공>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도 수록돼 있다. 불같은 열정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애틋하고 슬픈 사랑도 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연인이 보낸 편지에 이렇게 답을 한다. “당신이 보낸 도발적인 키스가 나를 극도로 흥분”시켰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고난에 맞닥뜨린 작가의 편지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채털리 부인의 여인’을 쓴 D. H. 로렌스는 프랑스 풍자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미국 세관에 압수당하자 걱정에 휩싸인다. 자신의 작품에도 성 묘사와 욕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라블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신작이 압수당하지 않도록 부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위대한 작가들의 손 글씨 뒤에 숨은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 편지는 곧 문학의 역사라는 사실과도 조우하게 된다.

<미술문화·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