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미술관’과의 10년 전 약속 지킨 세계적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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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미술관’과의 10년 전 약속 지킨 세계적 조각가
박승모 작가, 고흥 남포미술관에 ‘색소폰’ ‘이삭줍기’ 기증
“지역 미술관 활성화 도움”…‘구찌 가옥’, 영화 ‘기생충’ 작업
2021년 10월 17일(일) 20:10
박승모 작가가 고흥 남포미술관에 기증한 ‘색소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조각가가 10년 전 ‘시골 미술관’과의 약속을 지켰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고흥 남포미술관(관장 곽형수)에 최근 경사가 있었다. 개관 당시 화제를 모은 서울 한남동 ‘구찌 가옥’ 외관을 제작하고, 영화 ‘기생충’에 등장해 화제가 됐던 작품을 만든 박승모 작가가 아무 조건 없이 대작 2점을 미술관에 기증·설치한 것.

박 작가와 미술관의 인연은 지난 2011년으로 올라간다. 조각가 7인이 참여한 ‘움직이는 예술마을’전에 참여했던 박 작가는 이후 2013년 개인전 ‘환(幻)’을 통해 다시 남포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 인연을 이어갔다.

박 작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남도의 소박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데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고, 전시를 마치고 떠나며 “기회가 닿으면 작품을 한 점 기증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박 작가의 작품이 너무 좋았던 곽 관장은 내심 기뻤지만 믿기지 않아 당시에는 설마 이게 이루어질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곽 관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구찌가옥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 작업이 끝나면 남포미술관에 기증할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 3월 현장 답사를 온 박 작가는 당초 미술관 정원에 대형 조각 작품을 설치하기로 한 데서 한 발 더 나가 미술관 실내에도 작품을 놓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장 답사 결과, 관리 문제 등을 감안해 당초 11m 정도로 구상했던 작품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또 다른 작품을 기증하기로 하고, 5개월여에 걸친 제작·설치 과정을 통해 최근 공개했다.

박승모 작 ‘이삭줍기’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색소폰’은 스테인리스 와이어로 색소폰의 형상을 구현한 크기 400×220×70cm, 무게 약 1.5t에 달하는 대형 입체작품이다.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와이어 중첩을 통한 명암의 대비로 표현해낸 밀레의 ‘이삭줍기’( 230×470×10cm)는 평면 철망 조각작품으로 박 작가의 작품으로는 국내 미술관에 설치된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곽 관장은 설치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박 작가가 보여준 ‘태도’에 감동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재료비만도 큰돈이 드는 작품을 몇 날 며칠 제작하는 스텝과 작가님께 식사 한끼를 대접하려해도 모두 거절하셨어요. 설치가 완료된 후 작은 기념식을 열겠다는 것도 마다하셨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고,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하더군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박승모 작 ‘마야 2078’
경남 산청 출신으로 동아대 조소과를 졸업한 박 작가는 독일과 미국에도 작업실을 두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미국 나이키 본사 로비에도 설치돼 있다. 또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서는 이선균·조여정 부부 저택 거실에 걸린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로 몽환적인 숲의 모습을 그린 ‘마야 2078’를 선보이기도 했다.

곽 관장은 “서울 유수 미술관이 아닌, 시골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걸 두고 주변에서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해들었다”며 “늘 뒤에서 지켜보겠다는 작가님의 마음을 새기고, 소중한 작품을 기증해준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좋은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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