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다 취업 급급…2018년 강화된 규정 1년 만에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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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다 취업 급급…2018년 강화된 규정 1년 만에 완화
직업계 고교생 꿈 짓밟는 현장실습 이대론 안된다 <3>
뒤로 가는 현장실습 정책
기준 충족한 기업 현장실습서
서류로만 평가한 기업도 허용
학교·교육청 관리감독은 느슨
여수 요트업체 관계자 입건
2021년 10월 12일(화) 23:00
여수 해경은 지난 8일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 요트 정박장에서 해경 구조대원을 투입, 현장실습 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 군 사고와 관련한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구조대원들이 홍군이 찼던 12㎏짜리 납 벨트를 건져올리고 있다.
여수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고(故) 홍정운(18)군 사건은 정부의 섣부른 정책 완화와 학교와 교육청의 느슨한 관리·감독, 안전 대책 없는 현장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참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사망 사고(2017년)를 계기로 현장실습 규정을 강화했다가 1년 만인 2019년 느슨하게 완화했다.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선도기업’ 중심의 현장실습만 진행키로 했다가 학교가 서류만으로 평가한 ‘참여기업’에서도 현장실습이 가능하게 허용한 게 골자였다.

이 때문에 아이들 안전보다 취업률에 목매는 특성화·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관련자들 입장에 더 기울었다는 지적이 터져나왔지만 바뀌지 않았다.

결국,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홍 군은 법으로 금지된 잠수 작업을 지시받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 끝내 살아 나오지 못했다. 정부와 교육부는 당시 참여기업에서 실습 전문가를 ‘기업현장교사’로 지정, 운영해 현장실습생의 안전과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허점 투성이였다.

여수 해양과학고 교사와 일부 위원이 서류로 심사한 홍 군의 현장실습 참여기업은 1인 업체로, 학교측은 사업주를 기업현장교사로 지정했다. 결국, 잠수 자격증도 없는 비전문가가 잠수 작업을 지시하고 사업주 혼자서 안전·근로환경을 총괄하면서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제지할 사람은 전혀 없었다.

학교측도 취업에만 급급, 순회 지도를 나가지 않았고 전남교육청은 현장실습생들이 나가 있는 참여기업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무책임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초과 근무에 불법 잠수 작업에 대한 지도 감독은 커녕, 교육청과 학교 당국은 낯선 현장에 투입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든 매뉴얼조차 제대로 지켜지는 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이같은 목소리가 정부와 교육청을 향해 쏟아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열린민주당 강민정(비례)의원은 홍 군이 다니던 여수해양과학고의 해양레저학과의 잦은 학과 개편 실태를 지적했다. 부족한 현장실습처 확보 및 양질의 취업 기업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학생들의 안전과 노동조건 향상에 소홀할 수 밖에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여수해양과학고는 지난 2008년 수산양식(3과), 상업(3과), 자동차(3과) 중심의 학과를 4년 만인 2012년 자영수산(6과), 토탈미용(3과)으로 바꾸더니 지난 2018년 자영수산(6과), 해양레져(3과)로 다시 변경했다. 지역사회 미래 먹거리와 신산업 발전 가능성 등을 고민한 뒤 적합한 인력 양성 학과를 결정했다고 보기보다 지역 내 취업 가능한 일자리와 학생 선호도, 학생 수 감소여건 등을 반영해 취업률 높이는 데 필요한 학과로 선정했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취업률도 기대에 못 미쳤다. 2018년 토탈미용과의 경우 남학생(3명·100%)을 제외한 여학생(정원 15명) 취업률은 46.67%로 여수 특성화고 평균 취업률(66.1%)에 못미쳤다. 자영수산과 남학생(30명) 취업률은 56.7%였다. 특성화고의 경우 매년 취업률이 교육부의 학교 평가 지표가 되고 현장실습 업체 수가 취업률과 직접 연결되는 점,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실정을 고려하면 안전, 노동조건 등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강민정 의원은 “실제 현장은 바뀐 것 하나 없이 점검과 평가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여수해경은 12일 홍 군 사망사고와 관련,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업체 관계자 A씨를 입건했다.

해경은 현장 CCTV 영상 분석과 구조에 참여한 요트 관계자 B씨 등 3명 진술, 현장 실황조사,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해경은 잠수작업 시 2인 1개조로 작업을 하여야 함에도 수중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았고, 잠수자격증이 없는 실습생에게 위험직무인 잠수작업을 시키면서 잠수자격증을 소지한 안전관리자도 배치하지 않는 등 사고예방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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