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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쓴 맛과 애환 담긴 ‘소주’ 역사와 애주가들 연대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
남원상 지음
2021년 10월 01일(금) 10:00
“이러한 변화 속에 성립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공식은 1997년 외환위기로 더욱 굳어진다.(중략) 회식 메뉴는 자연스럽게 소고기에서 돼지고기로, 특히 값싼 삼겹살로 옮겨 갔다. 한우 전문점들조차 ‘IMF 메뉴’라며 삼겹살을 메뉴에 올릴 정도였다. 밥상 사정이 이러하니 술상 사정은 어떠했겠는가. 조금이라도 저렴한 술, 조금이라도 독해서 시름을 더 빨리 잊을 수 있었던 술인 소주가 인기를 끈 것은 당연지사였다.”(본문 중에서)

처음 소주를 마셨을 때 맛을 떠올리면 대체로 비슷하다. ‘쓰고 역하다’는 것이다. 목구멍이 뜨겁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대게 그렇게 소주를 입에 댄다. 그러다가 몇 번 마시고 익숙해지다 보면 그 ‘쓰고 역한’ 맛에 소주를 찾게 된다.

9억 1700만ℓ.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소비된 소주 양이다. 소주 한병은 360㎖로 약 0.4ℓ에 달한다. 이를 환산하면 22억 925만 병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다시 인구 5000만으로 나누면 약 50병 정도가 된다.

왼쪽부터 보해, 선양, 금복주에서 나온 소주병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 1명이 1년에 마시는 소주가 50병쯤 된다는 얘기다. 미성년자를 제외하면 평균치가 훨씬 올라가고, 누군가는 1년에 200병, 300병을 마시는 꼴이다. 소주는 흔히 서민의 술이라고 하는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그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다.

소주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소주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는 제목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인생의 쓴맛과 애환이 담긴 술, 소주는 소비량과 무관하게 술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저자가 혹여 주당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혀가 잊지 않을 만큼만 깨작깨작 마신다”는 남원상 작가. 한때는 술 많이 마시는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부었다. 이번 책은 한마디로 ‘소주의 역사와 소주를 마셔온 이들의 연대기’다.

‘아무튼, 술집’의 작가 김혜경은 “종종 쓰고 가끔 역하고 어쩌다 한 번 달지만, 우리 소주도 다 사정이 있었다고요. 소주의 역사를 알고 마시면 더 맛있어지진 않으나 안주로 늘어놓을 만한 이야깃거리만큼은 생긴다”고 상찬한다.

사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술은 맥주다. (2019년 기준 연간 맥주 소비량은 17억ℓ다) 그러나 소주는 소비량과 무관하게 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대부분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는 것은 ‘맛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값이 싸서, 빨리 취하고 싶어서, 부장님이 좋아해서” 등등 이유는 많다.

소주는 한자로 ‘불사를 소(燒)’와 ‘술 주(酒)’로 표기된다. 원 뜻 그대로 하면 “불사르는 술”이다. 불에 구운 떡을 ‘소병(燒餠)’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떤 식으로든 소주에는 증류주의 특징이 담겨 있다. 저자는 “같은 증류주라도 재료나 제조 방식, 숙성 기간, 희석 농도 등에 따라 질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한다.

소주를 내리는 데 쓰는 재래식 증류기인 소줏고리. ⓒ국립민속박물관
해방 이후 소주는 30도 소주가 표준이었다. 당시 병 라벨에 ‘30도’라는 표기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기준이 무너진 건 1973년 진로가 25도 소주로 판매하면서였다. 그러나 대중의 취향은 조금씩 변했다.

저도 소주 경쟁은 지난 1991년 희석식 도수 제한이 20~30도에서 35도로 완화되면서였다. 알코올 함유율 35% 이하만 충족하면 5도든 10도든 소주라 할 수 있었다. 1992년 보해는 15도 소주인 ‘보해 라이트’를 내놓았다. “소주도 이렇게까지 순해질 수 있습니다” 출시 직후 회자됐던 문구다.

소주는 정치인들이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노태우는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과 ‘보통 사람의 술’ 소주의 이미지를 조합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밖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인터뷰를 하며 소주 주량을 말하며 소탈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해장 음식’의 저자 미깡은 “스펙타클한 소주 연대기를 해박하고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책”이라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쏘주’ 한 잔 생각이 날 것이고 노래도 흥얼거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해문집·1만4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