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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주들에게 배우는 위기 대응법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
김준태 지음
2021년 09월 25일(토) 21:30
조선의 왕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 전쟁을 겪었다. 역사가들은 인조가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쇠락해 가는 명나라와 청(후금)나라 사이에서 명의 편을 들고 청을 무시해 적으로 돌렸다.

전쟁 이후에도 인조는 남 탓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던 것이다. 한국철학문화연구소 김준태 연구원은 인조는 ‘통제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 본다. 위기와 같은 불안 요소를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상황을 오판했다는 의미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했지만 반성적인 성찰도 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복원력을 키우지도 못했다.

조선의 리더들은 재난과 위기를 어떻게 마주했을까? 김준태 박사가 펴낸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는 현대적인 관점과 이론으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다. 수많은 재난과 위기 속에서 조선의 리더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했는지 초점을 맞춘 것. 전작인 ‘군주의 조건’에서 조선 왕들의 리더십을 정리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20가지 사례로 위기 대응 리더십을 들여다본다.

먼저 김 박사는 한(漢) 대의 학자 동중서의 말을 인용해 역사를 정의한다. “지나간 것을 살펴 다가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교훈으로 삼을 때라야 역사적 쓸모를 획득한다.

한마디로 역사는 실력을 키워주는 ‘기출문제집’과도 같은 것이다. 성공과 실패 과정을 복기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한다. “시대라는 옷만 달리 입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천민출신 장영실을 등용해 과학을 부흥시킨 세종의 리더십은 인재를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영화 ‘천문’ 장면.
세종은 토지 조세 제도인 공법을 개혁하면서 철저한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정책을 시험했으며 시행에 앞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공법을 제안할 당시부터 결정될 때까지 “15년간 조정 내의 다양한 협의와 찬반 토론을 직접 이끌었는데” 지루한 과정임에도 대충 처리하지 않았다.

아울러 세종은 구휼 행정 전반을 정비했다. 흉년이 든 지역에서 구휼미를 공급하는데 수령에게 재량권을 부여했다. 또한 지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재난 상황은 국가 차원의 개입을 감행했다.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의미다.

태종이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도 준비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오늘날 기업이나 정부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대체 계획과 승계 계획을 세운다. 태종은 15년 동안 세자 직위에 있던 양녕대군을 폐위한다. “세자의 행동이 지극히 무도(無道)하여 종묘사직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이 폐위 요지였다. 그러면서 “일에는 하나의 길만 있지 않으니 그저 사리에 합당하길 기대할 뿐”이라는 철학을 견지했다.

적장자 승계가 원칙이기 때문에 세종은 자격이 안 되었다. 그러나 세자라는 존재는 국가 안전과 왕권 단절을 방지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태종에 따르면 충녕대군은 학문에 힘쓸 뿐 아니라 국정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대미문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위기는 늘 반복돼 왔다. 조선 왕들은 상황에 따라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저자는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자세히 복기함으로써 부족하나마 우리의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기출문제집’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고 의미를 밝힌다. <민음사·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