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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패’
2021년 09월 13일(월) 01:30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변혁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한 열망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꾸려진 전남대 국문과 시 창작 동아리 ‘비나리패’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삶으로의 예술 또는 운동으로서의 예술’을 주창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견지했다. 또한 구호보다는 삶에 뿌리를 둔 구체성에서 문예운동의 활로를 찾았으며 시 창작 외에도 시평, 역사 탐방, 농촌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사전적 의미의 비나리는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 양식’을 뜻한다.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호남학과 정명중 교수의 저서 ‘전남대 비나리패의 문예운동’은 당시 비나리패의 역사와 활동 및 의미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이다. 정 교수는 “로컬 담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지역 문학 연구 관점에서조차 이들의 활동이 누락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집필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비나리패 기억이 점차 잊히는 데다 주류 또는 정통 문학사 시각에서도 이들의 활동이 재평가되지 못하는 현실을 환기하고 싶었다.”

비나리패는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공동창작을 시도, 문예 창작 관점에서도 사뭇 이색적인 족적을 남겼다. 특히 집단지성이 발현된 작품 ‘들불야학’은 오월시 동인집에 실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모두 6편의 공동 창작시, 5권의 시집, 1권의 시선집은 남도를 넘어 한국 문학사에 신선한 파문을 던졌다. 동아리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는 저마다 문학적 성취를 일군 시인으로 성장했다. 김경윤·임동확·이형권·윤정현·송광룡 등이 그들이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특히 현실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 탓에 ‘코로나 블루’를 겪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2학기 개강을 한 지 2주가량 지났지만 대학 캠퍼스는 여전히 적막에 빠져 있다. 40여 년 전 비나리패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대의 질곡에 맞서’ 성과를 이뤄 냈던 것처럼, 코로나 세대 또한 언젠가는 오늘의 시대를 의미 있는 결실로 엮어 내리라 기대한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