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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축구’
2021년 09월 10일(금) 01:30
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별 충돌도 없었는데 한 선수가 갑자기 쓰러져 고통을 호소한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한참 지나 의료 요원들이 선수를 옮긴다. 표정을 보면 큰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 아니다. 들것에 실려 나갔다가도 금방 멀쩡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국과 레바논의 경기 중 펼쳐진 이른바 ‘침대축구’의 한 장면이다.

침대축구는 시간을 끌기 위해 선수가 그라운드 위에 눕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전력이 약한 팀이 먼저 골을 넣었을 때 나온다. 어떻게 해서든 비기기 위해 사용되는 전술(?)이기도 하다. 옷깃만 스쳐도 넘어지고, 발목을 잡거나 배를 움켜쥔 채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한 명이 뒹굴며 심판의 시선을 끌면, 또 다른 선수가 엉뚱한 곳에서 아무 이유 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선수도 관중도 모두 화나게 하는 침대축구의 원조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프로팀들이다. 원래 수비 전술로 사용됐지만 팬들의 분노로 그라운드에서 퇴출됐다. 한데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이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중동 축구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침대축구가 만연하는 이유로는 중동의 ‘폐쇄된 축구 문화’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부분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막으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그들 특유의 성향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축구에서는 시간 끌기도 수비 전술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이 그라운드에서 구르는 상태에서 수비에 중점을 두는 진정한 수비 축구와 달리, 침대축구는 공이 멈춘 상태에서 선수들이 경기장에 눕기 때문에 전술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본선 진출을 위해 앞으로 다섯 번의 중동 원정에 나서게 된다. 중동전 최대의 적은 무더위도 모래 폭풍도 아닌 침대축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불리할 땐 1초도 아깝다며 부지런히 뛰지만, 유리하거나 최소한 비길 수 있을 땐 그라운드 전체를 침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침대축구 예방법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선제골을 넣는 것이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