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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바라기’였던 팬들 이젠 ‘스타 키우기’ 한다
팬덤 문화, 장르가 되다
주체 세력으로 등장한 팬덤
대중문화 지형에 큰 영향
음원시장 좌우하며 스타 키우기
중장년층 팬덤 급성장
2021년 08월 09일(월) 21:10
지난해 10월 10~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온라인 콘서트(MAP OF THE SOUL ON:E)는 전세계 191개 지역·국가에서 ‘아미’ 99만 3000여 명이 온라인으로 시청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스타는 내가 키운다!” 팬덤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생일을 맞은 스타를 축하하기 위해 단체 헌혈을 하고, 기업에 요청해 광고 모델로 발탁하게 하는 등 팬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광주에서 직접 만난 팬들의 활동 모습,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팬덤, 대중문화 전면에 나선 중장년 팬덤까지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팬덤 문화를 들여다본다.

지난 6월 27일 광주 상무지구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장.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수백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늘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맞춰 입기라도 한 듯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더위 따윈 아랑곳없는 것처럼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다.

지난 6월 말 미스터트롯 광주콘서트를 보기 위해 대구에서 달려온 이찬원 팬카페 회원들이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로 건너에는 이제 막 도착한 버스에서 30~40명은 되어보이는 무리가 내린다. 모두 노란색 티셔츠를 입었다. 이들이 타고 온 버스 옆면에는 ‘대구 대찬방 너의 찬란한 여름 이찬원’ 대형 글씨와 함께 트로트가수 이찬원의 얼굴 사진이 도배돼 있다. 광주에서 열리는 미스터트롯 광주콘서트에 단체로 원정 관람 온 대구 팬클럽 회원들이었다.

#‘스타를 키우는 사람들’팬덤의 진화

가수나 배우, 운동경기나 선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팬(Fan)’이라 칭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 뿐 아니라 스포츠에도 많은 팬들이 존재하며 최근에는 정치인들을 향한 팬도 등장했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은 보통 ‘지지자’로 표현하기 마련인데 요즘에는 지지하는 당사자는 물론 언론 등에서도 ‘팬’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모양새다. 팬심(팬+마음), 팬질(팬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생팬(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극성팬) 등 팬들의 활동을 빗댄 다양한 신조어들도 등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팬덤(Fandom)’이다. ‘fan’+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로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팬덤은 쉽게 말해 팬들의 집단이다. 80년대 조용필의 ‘오빠부대’부터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 등 무리지은 팬들의 활동을 모두 팬덤으로 볼 수 있다. 팬클럽처럼 무리지어 활동하지 않아도 개개인의 팬이 같은 대상을 좋아하면 같은 성격의 무리로 볼 수 있기에 이 또한 팬덤이다.
미스터트롯 광주콘서트 관람을 앞두고 임영웅 팬클럽 쉼터를 찾은 팬들.
요즈음의 팬덤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스타의 사진을 사다 모으며 음반을 구매하고 콘서트나 방송이 있으면 찾아가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스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소비의 주체가 되어 사회현상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팬덤의 활동은 나날이 진화돼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의 팬덤 문화가 됐다는 분석이다.

팬클럽 회원들이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무리지어 움직이는 현상은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TV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고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무리 먼 거리라도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찾아다니는 모습이다.

변화된 게 있다면 팬층이 다양화 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10대 위주였다면, 지금은 중장년층의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맹목적으로 연예인들을 좋아한다며 10대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던 부모세대가 이제는 직접 현장에 나와 젊은 세대와 같이 스타를 응원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생겨났다.

변화의 중심에는 트로트 팬덤이 있다. 요즘 대세가 된 트로트 가수들의 팬은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10대 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점이다. 10~20대들이 갖지 못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부, 지하철 전광판 광고, 앨범이나 굿즈 등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 복잡하다는 이유로 배우지 않던 디지털 기술까지 직접 배워가며 음원 스트리밍을 하는 등 아이돌 팬덤 못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광주전남총괄 강미정씨는 “최근에 가수 임영웅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 위해 ‘만원의 행복’ 모금 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는데 200만원을 흔쾌히 내주신 팬분이 계셨다”며 “연세가 드신 그 분은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런 지원 외에 특별한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시며 후원금을 내주셨다”고 전했다.

콘서트를 기다리는 동안 가수 영탁의 대형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탁오빠 옆에 뽀오짝’ 회원들.
세대간의 공감대 형성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로트 가수 영탁 공식 팬카페 ‘영탁이 딱이야’의 광주전남 지역 모임인 ‘탁오빠 옆에 뽀오짝’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닉네임 ‘안쉬운누나’(57)는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20~30대 젊은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하며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할 수 있겠나”면서 “젊은 친구들이 스위밍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정보가 빨라서 여러 가지 정보도 제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조직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팬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한 이들은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스타를 광고 모델로 기용해 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미스터트롯 우승자인 임영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임영웅이 자신의 SNS에 모 업체의 커피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올리자 팬덤은 이 커피를 ‘영웅님 커피’라 부르며 같은 커피를 구매하며 소비를 확대시켰다. 팬덤은 이어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에 연이어 글을 올리며 임영웅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임영웅은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광고모델로서의 영향력이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에 결정됐겠지만 결국은 팬덤이 자신들의 스타를 광고 모델로 만든 셈이다.

팬덤의 규모가 커진 만큼 이들의 파급력도 무시 못하는데 음원 조회수를 올리는 등의 조직력이 힘을 발휘하면서 음원시장을 좌우하기도 한다. 특히 그동안 귀찮게 배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스마트폰 사용을 꺼리던 중장년층이 지역별 스터디 모임 등을 통해 음원과 영상 조회수를 높이는 법을 배우면서 스타를 응원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이들은 스타를 위해 할 수 있는 ‘덕질’의 첫 번째로 음원 스트리밍을 꼽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 ‘따로 또 같이’BTS 아미들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Army)’는 K-팝 팬덤을 대표한다. BTS의 성장은 아미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팬덤의 역할이 크며 팬덤 아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BTS 이름으로 기부나 봉사활동, 음원 스트리밍, 광고 제품들을 적극 소비하는 활동은 여느 팬덤과 마찬가지지만 팬덤 아미는 세계 곳곳에 포진돼 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방탄소년단(BTS)은 10주 연속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미 여러번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적인 스타임을 입증하고 있는 BTS는 최근에도 신곡 ‘버터(Butter)’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후속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배턴 터치를 했다가 다시 또 ‘버터’가 1위를 차지하며 10주 연속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8월7일자 차트)

이같은 결과 역시 팬덤 아미의 지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빌보드 핫 100 순위를 산정하는데는 음원 다운로드 양과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방송 횟수 등 다양한 지표가 반영된다. ‘버터’는 음원 발매 일주일만에 197만5000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이틀만에 2만5000장을 추가하면서 200만을 돌파했다. 올해 발매된 앨범 중 가장 높은 판매량으로 알려졌다. 프랜차이즈 맥도날드 미국 본사의 제안으로 방탄소년단과 협업해 탄생한 ‘BTS 세트’는 전세계 50개국에서 판매됐는데 전세계에서 구매 열풍이 이어졌다. BTS팬인 아미들을 겨냥해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30일까지 판매된 BTS 세트는 국내에서만 143만 개 세트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맥도날드에 한글이 등장하는 위상도 발휘했다.

2019년 4월 광주에서 열린 슈퍼콘서트에서 BTS(방탄소년단)가 등장하자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광주일보DB>
팬덤 아미의 강력한 파워는 스타와의 유대감이 크게 작용한다. 스타들에게 있어 팬이 소중한건 당연한 거지만 BTS의 팬 사랑은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 아미의 지지력이 더 탄탄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팬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는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을 네이버 V앱을 통해 2015년부터 방영했다. 현재는 에피소드당 조회수가 1000만 이상을 기록할 정도록 영향력을 가진 예능 콘텐츠가 됐다.

팬카페와 SNS에서 팬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BTS는 데뷔 초창기부터 아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않고 표현해 왔다. 최근 빌보드 핫 100에서 배턴 터치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후 국내 한 방송사에 출연한 이들은 “노래를 들어준 모든 분과 팬클럽 아미에게 감사하다. 우리가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된 건 팬 여러분, 아미 여러분 덕분이다.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 아미 여러분들 사랑한다”고 말했다. 특히 뷔는 팬들과의 교류에 대해 “아미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하고 소통한다. 아미들은 말 못할 사정이나 일상생활을 위해 위버스(BTS 소속사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에 편지로 남겨준다. 그걸 읽고 있으면 아미들도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는데 ‘나라고 왜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일상생활이나 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아미한테 말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BTS 멤버들이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은 팬덤으로도 이어져 이들의 기부 역시 월드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나이야 가라” 미스터트롯 콘서트 현장

팬덤 문화를 바꾼 대표 사례가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다. 미스터트롯은 결승에 오른 Top7의 팬들이 많아지면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6월 25~27일 사흘간 광주에서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 현장은 컬러부터 화려했다. 스타를 상징하는 컬러의 옷을 맞춰입고 응원봉, 슬로건, 포토카드, 명찰, 머리띠, 인형 등을 구입해 콘서트 관람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같은 가수를 응원하는 것만으로 이미 친밀감은 형성됐고 벌써 하나가 된 듯한 분위기다. 인근 상가 건물들은 스타를 응원하는 대형 사진과 응원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로 도배됐고, 일부 상가는 팬카페 회원들이 대여해서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미스터트롯 우승자 답게 팬클럽 회원수가 가장 많은 임영웅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단연 많았다.

동서지간인 임혜숙(61.여수)씨와 유금자(58.부산)씨는 임영웅의 팬이다.
임영웅의 공식팬카페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광주전남 회원들이 마련했다는 쉼터 앞. 하늘색 스카프를 사이좋게 목에 두르고 있는 이들은 동서지간이었다. 여수에 살고 있는 ‘형님’ 임혜숙(61)씨와 부산에 사는 ‘동서’ 유금자(58)씨는 전날 여수에서 하룻밤 지낸 후 임영웅을 보기 위해 미스터트롯 콘서트장을 찾았다. 티케팅 당일 순식간에 매진이 될 정도로 표를 구하기 힘들었다는데 가수의 얼굴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며 흥분해 있었다. 임씨는 “평소에도 자주 만나며 친목을 쌓아오고 있지만 함께 콘서트를 보러 오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도 영탁’ ‘막내딸도 영탁’ 티셔츠를 맞춰 입은 김향순씨와 딸 이현미씨.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현장에 도착했다는 김향순(61)씨와 딸 이현미(35)씨는 각각 ‘엄마도 영탁’ ‘막내딸도 영탁’이 적힌 파랑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저녁 7시30분에 시작되는 마지막 콘서트 표를 예매했다는 모녀는 1차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착해 소풍나온 학생들처럼 밝은 표정으로 현장 분위기를 즐겼다. 두 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현장을 찾은 김선미(57)씨는 딸들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손을 ‘ㄱ’자 모양으로 굽히며 “건행” 인사를 건넸다. 임영웅이 팬들에게 자주하는 인사말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줄임말이다. 팬들 사이에서도 ‘건행’은 인사가 됐다. ‘덕질’이 취미인 막내딸(24) 덕에 콘서트 티케팅에 성공한 김씨는 임영웅 응원봉과 마스크, 머리띠 등 응원 도구를 갖추고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갱년기와 친정어머니의 부고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김씨에게 가수 임영웅의 등장은 크게 위로가 됐고 그 고마움 덕에 온 가족들도 임영웅의 팬이 됐다고 전했다.

도로 건너편에는 영탁 팬들이 모여 콘서트를 기다렸다. 일명 ‘영탁존’이라 불리는 이곳은 영탁 팬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를 콘서트가 열리는 사흘동안 개방하면서 영탁 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했다. 영탁의 공식 팬카페 ‘영탁이 딱이야’ 광주전남 회원들의 지역명은 ‘탁오빠 옆에 뽀오짝’이다. 광주전남 옆에 뽀오짝(바짝) 붙어있어 달라는 의미다. 팬들간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탁의 마음과 뜻을 같이해 회원들간의 사이도 매우 좋다. 지역이 서로 달라도 서로 위하고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다. 먼 길을 달려온 타 지역 팬들에게 선물이나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미스터트롯 다른 멤버들의 팬들과도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기부활동을 많이 하는 영탁의 선한 영향력으로 팬들의 기부도 이어진다. 신곡 ‘이불’이 나왔을 때 지역 미혼모 가정에 이불세트와 생필품, 음료 등을 전달했고, 지난 5월 13일 영탁의 생일날에는 성금을 모아 고창 장애인 자활센터에 전달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온 팬들과 자리를 함께 한 광주전남 팬카페 회원들은 “영탁 가수로부터 시작된 이런 모임이야말로 동서화합이다”며 “서로 위해주고 나눠주며 함께 영탁님 응원하는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