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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촌과 셰익스피어 마을 -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2021년 07월 28일(수) 05:00
‘김유정 우체국’ ‘김유정 반점’ ‘동춘천농협 김유정지점’…….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 들어서면 김유정이란 이름 석 자를 내건 각양각색의 간판들이 시선을 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김유정역’은 사람 이름을 딴 역으로는 국내 최초다. 원래는 신남역이었으나, 지난 2004년 이 지역 출신 소설가 김유정(1908~1947)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실레마을의 ‘얼굴’은 김유정 문학촌이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하게 들어가 있는 떡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레(시루의 방언) 마을은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의 대표작인 ‘봄봄’과 ‘동백꽃’의 무대이다. 점순이 등 그의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김유정 생가나 기념관과 함께 엮은 실레 이야기길(5.2km) 투어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문학관으로는 이례적으로 한 해 수십 여 만 명이 다녀간다니, 말 그대로 김유정으로 먹고사는 ‘김유정 마을’인 셈이다.

김유정 문학촌은 ‘강원의 얼 선양 사업’의 결실이기도 하다. 강원도는 지난 1997년부터 시인 박인환(인제군), 소설가 이효석(평창), 화가 박수근(양구) 등 강원도를 대표하는 충절·문화예술인 등 18명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 사업을 진행해 왔다. 모두 421억 원(2019년 기준)의 예산으로 문학관, 미술관, 기념관을 건립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향 광주의 초라한 예술인 마케팅

김유정 문학촌을 둘러보니 5년 전에 가 봤던 영국의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번(Stratford-upon-Avon) 마을이 떠올랐다. ‘에이번 강가의 스트랫포드 에이번’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마을인데,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곳이다. 이곳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생가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래머(grammar) 학교가 있다. 그의 무덤이 있어 셰익스피어 교회라고도 불리는 성 트리니티 교회와 아내 앤 해서웨이의 집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나무 골조를 덧댄 튜더 양식의 셰익스피어 생가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와 관공서 그리고 은행 건물들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마을’의 숨겨진 매력은 작은 가게들에 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엔티크 숍에서는 촛대·찻잔·식기 등 옛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고, 소박한 모습의 식당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즐겼다는 차와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 바로 옆에 자리한 아트숍에는 노트·볼펜·초콜릿·넥타이·양산 등 기념품을 구입하려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한 해 방문객이 무려 600만 명이라니, 이 마을에서 벌어들이는 관광 수익은 또 얼마나 될지 가늠이 안 된다.

이처럼 사람을 내세워 관광 도시가 된 곳은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는 비록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한때 제주와 인연을 맺은 화가 이중섭과 김창열, 사진작가 김영갑을 기념하는 미술관을 조성해 ‘예술의 섬’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얻었다. 경남 통영시 역시 박경리 기념관과 유치환 문학관, 윤이상 기념공원과 전혁림 미술관 등을 통해 ‘예술가의 고향’이라는 도시 브랜딩을 펼쳐 가고 있다.



유명한 작가들 도시 브랜드가 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광주의 인물 브랜드화는 유독 미흡한 실정이다.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 가수 김정호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이렇다 할 기념관 하나 갖지 못하고 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의 문학이 꽃을 피운 광주 양림동에도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고택이나 문학관은 찾기 어렵다. 저명한 예술가와 연관된 공간이나 기념관이 없다면 인물을 매개로 한 문화자산이 어찌 형성될 수 있겠는가?

서양화단의 선구자 고 오지호(1905~1982) 화백과 남종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 또한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오 화백의 예술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번듯한 미술관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간 기거했던 지산동의 초가(광주시 기념물 제6호)가 유일하다. 그나마 지산동 초가는 기념물로 지정되긴 했지만, 이로 인해 재산권 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주민들로부터 수십 년간 ‘문화재 지정 해제’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화백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의재 미술관’도 힘겹게 운영되고 있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의재미술관은 유명 건축가 조성룡 씨가 설계해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명품 미술관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 없이 후손들의 힘으로 학예사 인건비 등 제반 운영비를 부담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다.

근래 국내외 도시들은 다양한 축제와 특산품으로 도시 브랜드를 홍보하는 마케팅을 펼친다.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콘셉트의 축제가 많아 도시의 차별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게 바로 인물 특히 ‘예술인 마케팅’이다. 문학이나 미술 혹은 음악을 통해 대중과 공감해 온 예술인들이야말로 도시를 빛내는 최고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한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 가치를 가늠할 때 사람만큼 경쟁력 있는 것도 없다. 특히 예술인은 쇠락한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색깔 없는 도시를 문화의 허브로 바꾸기도 한다. 광주가 예술인 마케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