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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정읍을 찾은 까닭은’
2021년 03월 03일(수) 10:00
“모처럼 수준높은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코로나19로 찌든 심신을 달래고 왔습니다. 어떻게 시골 미술관에서 피카소 전시를 개최할 생각을 했는지,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엊그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원로화가 A씨가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주말 지인과 함께 정읍시립미술관(명예관장 이흥재)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 정읍에서 사랑에 빠지다’(이하 피카소전)전을 찾은 그는 아직도 감동의 여운이 생생하다며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왜 광주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전시가 열리지 않느냐”며 아쉬운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순간, 나 역시 2년 전 정읍시립미술관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 때도 봄의 길목에 들어선 3월 초였다. 다소 이른 시간인 오전 11시인데도 전시장은 수십여 명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이중섭·박수근·김환기·백남준·나혜석·오지호·이인성·이응노·전수천….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나 봤던 거장들의 작품을 ‘직관’해서일까. 전시장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했다.

당시 정읍시립미술관을 다녀간 방문객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는 풍경이다. 3개월 동안 열린 ‘100년의 기다림-한국 근현대 명화전’은 지방의 작은 미술관을 전국구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하루 평균 50여 명에 불과했던 방문객이 이 기간에는 하루에 400명이 다녀가는 등 2015년 10월 개관 이후 가장 많은 신기록(총 관람객 3만 2589명)을 세웠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광주, 서울, 부산 등 외지 방문객이었다. 정읍 인구가 11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일대 사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피카소전이 ‘2019년의 쾌거’를 재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코로나19로 ‘전시장 밖’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단체관람이 불가능한 데다 전시해설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사전예약을 한 방문객만 입장이 허용되는 등 관람조건도 까다롭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주목을 끄는 것은 정읍시의 ‘담대한’ 도전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코로나19로 전시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과 달리 정읍시는 시민들과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통한 위로와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고품격 전시를 내놓은 것. 지방미술관으로서는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기획이지만 ‘문화’로 정읍시를 전국에 알리는 카드로도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정읍시는 이번 피카소전을 관광명소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피카소전 관람객들에게 정읍 내장사와 주변 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올 초 광주시는 ‘찾아오고 싶은 광주, 머물고 싶은 광주’를 내건 예술여행 대표도시를 선포했다. 사실, 예술여행의 ‘메인’은 전시 콘텐츠다. 특정 시간에 가야만 즐길 수 있는 공연과 달리 시간 제약 없이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어서다. 특히 문화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힘은 명품전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역에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컬렉션이나 전시가 미흡하다. 예술여행 도시라는 타이틀이 공허하지 않는, 거장과의 추억을 이젠 광주에서도 즐기고 싶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