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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하면 뜬다는데
2021년 01월 13일(수) 05:00
채희종 사회부장 겸 편집부국장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여행의 1번지로 꼽는 도시는 단연 ‘파리’일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맨 먼저 에펠탑이 눈에 띈다. 파리를 관광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차례 만나게 되는 탑이다.

몇 해 전 대학생들과 함께 파리 문화기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첫 방문지가 에펠탑이었다. 그곳에서 가이드로부터 파리 시민들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에펠탑을 무조건 좋아하지만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라는 이유로 파리지앵들이 에펠탑 건립에 반대했다는 설명은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터이다. 지금은 수많은 여행 안내서에도 나와 있는 상식이다.



단순 거품인가 이유 있는 상승인가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기 위해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철 구조물이다. 1887년 1월부터 공사가 시작돼 콘크리트 기초 작업에만 5개월이 걸렸고, 이후 기초 위에 네 개의 기둥이 조립됐다. 석조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파리에, 그것도 도시 한 중앙에 거대한 철탑이 세워지자 소설가 모파상 등을 비롯해 예술가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망치는 흉물’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에펠탑은 25개월 만에 302m의 위용으로 탄생하게 된다.

건축 과정에서는 온갖 비난과 불평불만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1889년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자 600만 명이 관람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에펠탑 논쟁은 계속됐다. 급기야 건립한 지 3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1925년에는 “이제 만국박람회 등의 국제 이벤트가 없으니 철거하자”는 움직임마저 일었다. 끊임없는 논란 속에 에펠탑은 1959년 텔레비전 송전탑과 안테나가 더해져 320m로 더 높게 증축됐다. 현재 태어난 지 130년이 된 에펠탑은 파리 시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문화유산이 됐다.

가장 많이 그려진 모델, 가장 많이 사진으로 찍힌 피사체, 가장 많이 찾는 건축물, 가장 많은 기념품으로 복제된 구조물. 이는 모두 에펠탑을 수식하는 말이다. 탄생 시점부터 기존 문화예술계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았던 에펠탑은 만국박람회 직후 곧바로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군대가 군사통신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나서면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후 무려 40년 가까이 ‘흉물’과 ‘철거’ 논쟁에 시달렸다. 수십 년간의 탄압이 에펠탑의 성공과 명성에 한몫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국민이 가장 자주 마시는 술은 소주와 맥주지만, 그밖에 젊은이들이 즐기는 술을 꼽으라면 보드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전통주인 보드카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만든 술로, 러시아인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되 서민들의 술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보드카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본고장인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다. 보드카는 이미 위스키 이상으로 세계인이 즐기는 술로 자리 잡았다.

보드카가 세계인의 술이 된 것은 러시아인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탄압 때문이었다. 러시아 황제 리콜라이 2세는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높다며 도수를 제한했다. 볼셰비키 정권은 ‘인민들의 정신을 타락시켜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사회 기풍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다. 이렇게 보드카에 대한 규제와 탄압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인들은 세계 각지로 망명했다. 망명한 사람들 중에는 주조 기술자들도 섞여 있었고,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보드카를 만들었다. 점차 다른 나라에도 퍼져 이제는 미국·스웨덴·핀란드에서 만든 보드카가 러시아 제품보다 더 유명할 정도가 됐다.



숱한 예술가들이 비난했던 에펠탑

문화나 예술은 물론 사람도 반대편의 탄압과 공격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된다. 시쳇말로 ‘때리면 뜨게 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집중적인 압박과 견제를 받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들어 실시한 열 번의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두 번이나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현직 최고위 공직자가 집권당의 대선 주자를 앞서 지지율 1위를 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 없던 이변이다. 호사가들의 말처럼 탄압에 의한 단순 반작용인 것일까?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뭔가 허전한 분석이다. 아무리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나 뜰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떠도 너무 뜬’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워지자마자 철거 위기를 맞았던 에펠탑은 완벽한 구조미와 곡선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금주령으로 된서리를 맞았던 보드카는 숱한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숨막히는 러시아 역사 속에서 국민을 위로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윤석열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의 인기가 ‘때리면 커진다’는 정치공학적 원리에 의한 한때의 거품으로 끝날지, 아니면 집권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될지,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