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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플라워랜드’ 김보필 대표 “시들지 않는 꽃으로 고객 마음에 ‘봄’을 팝니다”
[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10)
금융업 종사하다 광주에 자리잡아…IMF·교통사고 고비 넘겨
매장 찾는이들 미소에 보람…비대면 판매 등 자녀들과 공동 경영
2021년 01월 07일(목) 22:00
“조화의 미덕은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언제나 절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거든요.”

‘샤론플라워랜드’ 김보필 대표. 그는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올 때마다 환하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누구라도 매장에 진열된 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분위기다.

매장 안은 어림잡아 수백 가지의 꽃과 관련 부속물들이 진열돼 있다. 장미, 국화, 백합, 카네이션 등 실내는 다양한 꽃들로 화사하고 싱그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잘 가꿔진 정원에 와 있는 것 같다.

김 대표는 31세인 90년대 중반부터 관련 일을 시작했다. 처음은 월세 300만원부터 시작했다. “오후 10시 30분 이전에는 결코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워놓고 하루하루 지켜나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사업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위기가 닥쳐왔다. 당시 점포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새로 일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다. 새로 시작한 가게의 월세는 5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일이 터지기 전에 철저하게 대비를 하는 성격이어서 겁 없이 다시 시작했다”며 웃었다.

‘샤론플라워랜드’라는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크리스천이다. 서글서글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상은 마치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준다.

“샤론이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지명인데 평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염두해뒀던 이름이지요. ‘샤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발음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잔잔한 평안을 주거든요.”

원래 그는 전북 진안이 고향이다. 대학에서는 회계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건설과 금융 계통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사업을 하는 외삼촌으로부터 조화 관련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광주에 오게 된 것은 “호남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고 예술의 도시”라는 점 때문이었다.

순조롭게 잘 나가던 사업이 위기를 맞은 것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였다.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남원을 가다가 순창 부근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겨울철이었는데, 도로에 ‘블랙 아이스’ 지점이 있었나 봐요. 당시 의사는 오른손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손을 못 써도 좋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치료를 하자고 했습니다.”

가만히 내민 오른손은 사고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장애를 입었지만 그는 손이 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현재 매장에는 아들 도영(29)씨와 딸 주영(28)씨가 나와 거들고 있다. 둘 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지만, 부모님 사업을 돕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아들은 경영과 운영 관련 업무를 배우고 있고, 딸은 온라인 사이트 운영과 회원 가입 등 비대면 부분을 맡고 있다. 남매 모두 “요즘은 조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며 “소재도 고급스러운데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에 점점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샤론플라워랜드는 항상 계절을 앞서가고 있다. 또한 인테리어 소품에도 많이 신경을 쓰고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생화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조화는 컬러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둘 수도 있고 무엇보다 오래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지요.”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영상·편집=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