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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문화, 르네상스를 보고 싶다
2020년 12월 02일(수) 08:00
“발견된 유물은 금동관, 금동신발, 대도, 도자, 도끼, 창, 화살, 톱, 이식, 구옥, 관옥, 여러 면옥, 소옥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때는 바야흐로 세밑이고 또한 연일 눈이 내려 두텁게 쌓이므로 충분한 조사를 실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유감스럽지만 잠시 조사를 중지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귀청 길에 올랐다.”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다이쇼(大正) 6년도(1917년) 고적 조사 보고’의 일부이다. (국립 나주박물관 펴냄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에서)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등 일본인 발굴자들은 1917년 12월, 나주 반남고분군 가운데 신촌리 9호분과 덕산리 4호분을 발굴했다. 이 가운데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 등 다량의 부장품을 수습했다. 이들이 나중에 작성한 조사보고서는 유물의 가치에 비해 너무나 짧은 한 쪽 분량의 문서와 사진 8장에 불과했다.

103년 전에 발굴된 신촌리 9호분 유물을 보기 위해 지난 주말에 국립 나주박물관을 찾았다. 전시실 내 금동관(국보 제295호)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옆에는 금동신발 한 켤레를 비롯해 봉황이 장식된 큰 칼과 세 갈래 잎이 장식된 칼 등이 전시돼 있었다. 푸른 녹이 슨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바라보며 아득한 마한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영산강 주위에 산재한 고분은 마한의 ‘타임캡슐’이다. 당시 일본인 발굴자들은 ‘그 장법과 관계 유물로 추정하건대 아마도 왜인(倭人)’일 것이라 여겼지만 현재 국내 전문가들은 고분의 주인공을 4~5세기 영산강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토착 세력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이날 전남도와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린 ‘2020 영산강 유역 마한 문화 포럼’에서는 대형 옹관을 봉인하는 이색 행사가 진행됐다. 마한 역사 문화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위해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정재숙 문화재청장 등 참석자들이 옹관 안에 금동관과 금동신발(재현품)을 집어넣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재조명되는 ‘잃어버린 왕국’



‘역사 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은 6개 문화권(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을 대상으로 한다. 마한 역사 문화권 범위는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 일대 마한 시대의 유적·유물이 분포돼 있는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한 문화권’에서 빠진 광주시는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영산강 상류인 광주에도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제375호)을 비롯해 월계동 장고분과 명화동 고분 등 상당한 마한 유적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잃어버린 왕국’ 마한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4월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 금동관 조각이 출토되며 마한 역사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도 부쩍 높아졌다. 당시 발굴로 마한의 독자성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나주·영암의 금동관은 백제의 하사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고학자 임영진 마한연구원장(전 전남대 교수)은 “나주 금동관과 영암 금동관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마지막 마한 세력의 정치적 독자성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유물”이라며 “영암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나주 금동관과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을 것이지만 정확한 제작지에 대해서는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광주일보 9월 16일자 ‘마한의 금동왕관과 금동상투관’)



스토리텔링과 축제 통합 필요



마한 역사 문화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백제 속국이 아닌 마한의 문화적 전통과 독자성을 찾는 여러 부문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마한 역사 문화권’ 11개 시·군 간의 공동 협력이다. 나주와 영암이 각각 마한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통합 추진을 모색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주 복암 ‘아파트형’ 고분군과 반남 고분군, 국립 나주박물관, 그리고 영암 내동리쌍무덤, 마한문화공원, 옥야리 고분군 등을 연계하는 탐방 프로그램도 좋을 것 같다. 현재는 행정구역으로 나뉘었지만 마한 시대에는 그러한 경계가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마한을 테마로 한 스토리텔링도 아쉽다. 국립 나주박물관 내 마한시대 유물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복암리 3호분에서 나온 녹슨 관고리를 보며 고(故)최인호 작가가 쓴 ‘제4의 제국’을 떠올렸다. 바람개비 모양의 ‘파형동기’(巴形銅器)를 단서로 가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소설이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반쪽짜리 고대 현악기나 용머리장식을 한 금동신발을 착용한 채 묻힌 정촌고분의 40대 여성 수장(首長) 등에 상상과 신화를 더해 소설이나 음악·드라마·영화 등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마한은 광주·전남 역사의 뿌리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그리스·로마를 재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마한 역사 문화를 ‘재생’ ‘부활’시켜야 한다.

/송 기 동 편집부국장·문화2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