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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잡지를 보는 듯…한국문학의 보물창고
<11>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2020년 11월 11일(수) 08:30
지난 2013년 개관한 인천 개항장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은 우리나라 근대기의 전통시, 신소설, 역사소설 등 다양한 자료가 비치돼 있다.
도시마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어휘가 있다. 문화수도, 생태수도, 행정수도, 해양수도 등등. 어떤 경우는 과연 그 수사가 도시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고유명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발현돼, 많은 이들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고착된다.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민낯을 봐야 한다. 날 것 그대로의, 도시가 그러안고 있는 원초적인 모습을 봐야 한다. 도시마다 내력이 있고 저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가장 본질적인 것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도시의 중심지가 있었지 않던가.

P.D. 스미스는 저서 ‘도시의 탄생’(2015)에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3억 명이 도시에 산다고 설명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까지는 전 세계 인구의 3%에 불과했지만 오는 2050년 무렵이면 75%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종합문예지 ‘소년’
그것은 도심의 확장과 연관이 있다. 도심지는 도시의 허파인 셈이다. 스미스는 “도심지는 도시와 지방의 경제 엔진이었고 매일 많은 노동자와 고객, 쇼핑객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도시가 성공적으로 성장하면서 도시 주민들은 급속히 발전하는 상업 지구를 지칭하기 위해 도심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부연한다.

스미스가 말한 상업지구는 도심의 성장을 전제한다. 우리 나라의 도심 내력을 볼 때, 항구는 도시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 가운데 하나였다. 인천은 개항을 상징하는 대표 도시다. 달리 말하면 ‘근대의 관문’ 같은 도시다. ‘개항’, ‘근대’, ‘관문’은 오늘의 인천을 가장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어휘다. 서구의 근대문화가 인천을 통해 물밀 듯 들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개항장 주변에는 옛 창고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것에는 오랜 세월을,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나름의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

개항장에는 한국근대문학관이 있다. 일제시대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 2013년 개관했다. 근대문화가 최초로 유입된 인천에, 그것도 최초 기착지인 중구 개항장에 문학관이 개관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인천에 가기 전에는 근대문학관에 대해 선입견을 가졌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책이나 잡지 정도의 자료를 모아놨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확인한 문학관의 모습은 이편의 생각이 단견이었음을 보여줬다. 콘텐츠를 비롯해 외관 건물, 시설은 여느 문학관과는 다른 분위기와 아우라를 발했다. 무엇보다 중구 일대는 개항장의 독특한 도시경관과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근대문학관 전시실 내부
오래된 한권의 잡지 같은 건물이 바로 근대문학관이다. 잡지는 사람살이의 다양한 모습과 풍부한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근대문학이라는 다양한 장르와 작가들의 이모저모, 당대의 풍습을 속속들이 담고 있다. 일제시대 건립돼 물류창고와 김치공장으로 활용돼왔지만, 2년간의 공사를 통해 근대문학관으로 변모했다.

이곳 문학관을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문학은 한 사회와 시대의 저변을 구성하는 문화의 근간입니다. 한국근대문학의 풍요로운 자산을 만난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 문화의 기초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근대문학의 성장을 주제로 한 상설전과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열린다. 또한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 문학 강연, 자료의 수집과 보존, 책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층 상설전시장에서는 1894년부터 1948년까지, 다시 말해 근대계몽기(1894~1910)에서 해방기(1945~1948)까지의 근대문학 형성과 역사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학창 시절에 배웠던 내용들이 떠오르면서, 자료가 비치돼 있는 창고 건물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과 마주한다. 특히 최초의 문예지 ‘창조’, 염상섭의 ‘만세전’ 초판본과 최초 근대 장편소설 이광수의 ‘무정’ 같은 자료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근대계몽기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이 시기는 왕조의 몰락과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척박한 땅에 뿌린 신문학의 불씨는 오늘의 과점에서 보면 귀한 선물이다. 이인직의 ‘혈의누’ 등 신소설과 역사전기물 등 다양한 자료가 이를 방증한다.

학자들은 1910년부터 1919년까지를 근대문학 출발로 본다. 이전 시기가 발아의 시대라면 이제부터는 일제 무단통치를 뚫고 자유로운 리듬과 개인의 정서를 노래한 것이다. 물론 근대문명에 대한 추구와 당대 식민지 현실이라는 길항의 관계가 이 시기에 노정돼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김소월 시를 노래로 들을 수 있는 공간
1919~1925년은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시기다. 김소월과 한용운 등은 전통적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아울러 이 기간에는 식민지 현실에 눈을 뜬 근대소설의 기초가 확립되기도 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두 갈래의 문학이 활발하게 펼쳐졌던 때는 1925~1935년이다. 식민지 현실과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는 카프의 등장, 피폐한 농촌의 실상을 고발한 농민문학은 이 시기의 큰 수확이다. 또한 이기영, 한설야, 강경애, 염상섭, 채만식 등 일군의 작가들은 본격 장편시대를 열어 우리 문학의 토대를 풍성하게 일궜다.

그리고 이후 1935~1945년은 날로 심해지는 일제 억압에 대응해 문인들이 창작과 반일로 맞섰던 시기다. 생명을 추구하면서도 조선적인 것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마지막으로 1945~1948년 시기는 해방의 감격과 맞물린 새로운 민족문학에 대한 열망이 피어났다.

근대문학관에는 인천지역 근대문학을 소개하는 공간도 있다. 인천의 지역문화와 지역성, 지역네트워크를 포괄하는 다양한 자료들은 인천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한다.

시대의 문화를 담은 잡지 같은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100년의 시간을 견뎌온 건물들은 또다른 100년의 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 문화의 근간, 우리 문학의 힘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