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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건축학 개론
2020년 10월 21일(수) 00:00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올 초, 광주일보 연재물 ‘문화를 품은 건축물 열전’ 취재를 위해 세종시에 다녀왔다. 행정수도답게 새로 지은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근래 광주 도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도 많았다. 굳이 양쪽의 차이점을 꼽으라면 광주보다 ‘스케일’이 조금 작은 정도랄까. 세종시라 해서 특별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전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가 도시의 랜드마크인 것 같아 씁쓸했다.

한데 시내 중심부를 지나자 독특한 외관의 정부 세종청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 대신 공중의 통로로 건물과 건물을 기다랗게 이어 놓은 형태는 여타 도시에선 보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통로 아래 도로를 지나 국무총리실 쪽으로 방향을 틀자 주변의 건축물과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세종 호수공원이 나타났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도 삼삼오오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시민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호수 옆 도서관’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독특한 외관의 국립 세종도서관은 지난 2013년 12월 국내 유일의 정책전문도서관을 표방하며, 지하2층 지상 4층 연면적 2만1076㎡ 규모로 건립됐다. 세종도서관 건축 디자인 공모전을 거쳐 최종 선정된 콘셉트(concept)는 ‘이모션 라이브러리’(Emotion Library), 즉 ‘감성 도서관’이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공간, 사람이 어우러지는 소통의 장을 지향하는 공간답게 호수공원을 내부에서 즐길 수 있게 설계됐다.

무엇보다 콘서트홀을 연상케 하는 로비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열람실은 기존 도서관과는 확연히 달랐다. 특히 조망권이 가장 좋은 도서관 4층에 레스토랑을 배치한 점은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 오전에 도서관으로 ‘출근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밤늦게까지 독서와 DVD 관람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원스톱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에 더 가까운 이곳의 정기 회원은 무려 1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참고로 세종시 전체 인구는 34만 명이다.



세종도서관과 해양박물관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또 있다. 지난여름에 둘러본 부산의 국립해양박물관이다. 사실 ‘영화의 도시’ 부산에는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공공건축물이 꽤 많다. 부산 영화의전당, APEC하우스, 부산현대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부산다움’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천혜의 푸른 바다와 빼어난 건축물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조형미는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특히 태종도 길목에 자리 잡은 국립해양박물관은 건물의 정체성과 부산의 지역성을 충실히 살려낸 ‘명작’이었다. 부지 4만5000㎡에 건축 연면적 2만5000㎡,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거대한 물방울을 형상화한 건물은 ‘동북아 해양수도’를 표방하는 부산의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었다. 또한 관람의 시작과 끝은 물론 내부의 전시 관람 동선에서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공간 설계가 돋보였다. 이곳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가 된 것은 이러한 여러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광주로 눈을 돌려 본다. 유감스럽게도 문화수도를 내걸고 있는 광주에는 도시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매력적인 공공건축물이 드물다. 지난 2005년 이후 디자인비엔날레와 국제도시 디자인 포럼 등 빅 이벤트를 개최해 왔지만 지역의 공공디자인과 연계시키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문화시설의 경우 심의 단계에서부터 주변과의 조화로운 디자인을 고려해야 하지만, 관행적으로 일반 건물과 동일한 건축 심의 잣대를 적용하다 보니 ‘내놓을 만한’ 명작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형 건축물 심의 과정에서도 도시와 건축물의 이미지 조화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광주의 일부 건설사들은 이런 ‘빈틈’을 이용해 ‘성냥갑 아파트’들을 찍어 내고 있다.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다. 막대한 설계비를 들여 공공성을 담보하는 수도권 지역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광주시는 지난해 4월 함인선 한양대 특임교수를 총괄건축가로, 24명의 건축학과 교수 및 건축가들을 공공건축가로 위촉해 놓고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했다. 옛 상무소각장 부지에 건립되는 ‘광주대표도서관’ 국제설계 공모를 제외하면 총괄건축가의 ‘효과’를 찾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지난달 출범한 ‘제1기 광주시 건축정책위원회’(건축정책위원회)는 잿빛 거리와 색깔 없는 광주의 건축물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함인선 총괄건축가가 주축이 된 위원회는 광주시 건축 분야의 중요 정책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이다.



광주, ‘살기 좋은 도시’ 되려면



문제는 광주시의 의지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과 시스템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이를 행정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광주와 비슷한 시기에 총괄기획가를 선임한 부산시의 행보가 이를 반증한다. 부산시는 전담부서인 ‘총괄건축기획과’를 신설한 데 이어 개방직 국장을 영입한 후 광역시 최초로 ‘지역공공건축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이후 국토교통부 주관 ‘2020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모에서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혁신행정상을 수상했다.

무릇 아름다운 건축물은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특히 공공건축은 대중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는 ‘공간 복지’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문화광주 시민들은 당연히 ‘문화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쾌적한 공간은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필수 요건이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신건축학개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