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한땀 꿈 한땀…그녀들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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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 한땀 꿈 한땀…그녀들의 연대기”
최미애 작가와 시어머니 박상해씨
뜨개물에 스토리 입혀 입체적 작품으로
시민·인도네시아 여성들도 참여
31일까지 광주여성가족재단 허스토리
2020년 10월 16일(금) 05:00
최미애 작가와 그녀의 시어머니, 인도네시아여성들이 함께 참여한 ‘그녀들의 연대기’ 전시 모습.
“여성들의 언어와 노동, 그리고…삶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전시관 입구, 뜨개로 만들어진 연잎들이 천장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래에서 바라본 연잎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연잎을 지나 전시관에 들어서면 뜨개로 제작된 나무기둥, 심장, 가방 등이 펼쳐져 있다.

조각가 최미애(50) 작가가 뜨개를 매개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녀들의 연대기’ 전이 오는 31일까지 광주여성가족재단 3층 전시관 허스토리(Herstory)에서 열린다. 전시와 시민 참여 프로그램, 아카이브 3개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최 작가의 작품과 그녀의 시어머니 박상해 씨를 비롯한 여성들이 함께 만든 뜨개물을 활용한 설치 작품이 함께 선보인다.

인천 출신인 최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남편과 독일로 유학을 떠나 슈트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가사, 작업을 병행하던 최 작가는 10여년 전 시간적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위의 수공예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뜨개작품이 됐다.

최미애 작가
“귀국 후 둘째를 낳고부터 독박육아가 시작됐는데 그때부터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죠. 독일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도, 일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요. 근데 한국은 정 반대더라구요. 육아에만 매달리다가 실과 바늘만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언제든 쉽게 할 수 있는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죠. 어렸을 적 엄마, 이모가 뜨개질을 했었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는 벤치에 앉아서 뜨개질을 했고, 밤에 아이들이 잠에 들면 또 쉬지도 않고 손을 움직였습니다.”

뜨개는 육아와 가사 등으로 잃어버렸던 꿈을 찾는 여정이었으며, 누군가의 엄마, 며느리, 아내로 살아가면서 놓쳤던 자아와의 대면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그룹전 등에 참여하면서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온 최 작가는 어느날 시어머니가 떠준 발매트 등을 떠올렸고, 그녀는 50년도 더 된 오래된 뜨개물을 전부 가져왔다.

재봉과 편물로 삼남매를 키우고 살림을 일궜던 시어머니의 뜨개는 그녀의 연대기 속에서 삶을 유지시켜준 위로와 치유의 매개체로 다가왔다. 아흔이 다 된 시어머니는 22살에 시집 와 8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서울 조카네 집으로 도피하다시피 올라갔다. 편물학원에 다니던 그는 남편이 자꾸 찾아오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박 씨는 친정에서 송아지를 팔아 사 준 편물기계를 가지고 봄, 여름에는 동네 아가씨들을 모아 편물기술을 가르쳤고, 가을, 겨울에는 옷을 떠서 팔았다. 그 편물기 한대가 금세 두 대가 되고 10대가 돼 제자들도 10명이 넘었다. 그렇게 삼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고, 집도 사고, 생계를 이어갔다.

젊은 시절의 시어머니 박상해 씨.
“어느 날 우리 시어머니는 왜 이렇게 열심히 뜨개를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시어머니가 뜬 작업물로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했다죠. 이후 나만의 소재(뜨개물)에 스토리가 입혀졌어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품화시키려고 고민했죠. 뜨개질로 만든 것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런닝셔츠는 나무 밑둥이 된 거예요.”

전시장에는 박 씨가 결혼 전에 떴던 이불보를 비롯해 자식들을 위해 만든 러닝셔츠로 제작한 나무밑둥이 전시돼있다. 또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만든 뜨개물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최 작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을 수소문했고, 그렇게 알게 된 미혼모들로부터 뜨개로 만든 연잎을 전달받아 전시장에 걸었다.

또 다른 전시작에는 지난 8월 두 차례 진행된 ‘가방 뜨개’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동참해준 20여 명의 여성들이 고이 간직했던 꿈과 일상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가방을 뜨는 과정 속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경험에 감정을 공유하며 위로와 치유를 통해 묵은 감정을 털어냈다.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상징하는 심장을 형상화 한 뜨개작품도 설치됐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이 제작한 뜨개가방은 전시 기간 판매되며 수익금은 미혼모 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

전시 기획자 조사라 씨는 여성들이 지나온 삶과 시대를 의미하는 ‘연대(年代)’ 와 여성들이 연결되어 함께 하는 ‘연대’(連帶)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최 작가는 “앞으로도 여성들의 관계맺기는 계속될 것이다”며 “만남과 이해의 노정이 반복될수록 관계가 굳건해지듯, 뜨개의 행위가 축적될수록 우리들의 서사도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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