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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맡고…오감으로 체험하는 아름다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아름다움을 감각하다
김영훈 지음
2020년 10월 16일(금) 00:00
색색의 우산으로 시각 효과를 극대화한 포루투갈 아게다 우산축제.
김영훈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화과 교수는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지붕에서 내리는 빗물은 신비로웠다. 빗물은 어둠 속에 감춰진 19개의 신실(神室)을 깨우는 듯 했다. 그는 아름다움을 초월하는 숭고함을 느꼈다.

김 교수의 체험처럼 사람들은 특정 공간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다. 이를 ‘감각 지도’라고 칭할 수 있겠다. 저마다 다른 미적 체험과 경로가 다양한 만큼 미에 대한 심미안 또한 상이하다.

김 교수의 책 ‘아름다움을 감각하다’는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닿는 모든 감각으로 체험하는 문화와 아름다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감으로 체험하는 아시아의 미와 문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아름다움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초점을 맞췄다.

“궁궐을 찾든 미술관을 찾든 누구나 그 공간만이 가진 고유의 냄새, 습도, 온도를 느낀다. 색과 조명은 우리 눈을 대상에 밀착시킨다. 주위 사람의 소리, 온갖 소리가 합쳐져 귀에 들어온다.”

사실 미적 감각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화학작용일 뿐 아니라 신경작용이며 끊임없이 외부 대상과 상호 작용하고 지각하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저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비교되는 미의 내용과 의미를 찾아간다. 인류학을 전공한 배경 지식은 자연스레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에 초점이 맞춰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양의 미적 경험과의 연결은 색다른 묘미를 준다.

먼저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시각의 내용이 펼쳐진다.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것네’를 예로 들며 자연이 주는 색감을 이야기한다.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색은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색과 관련된 감성이 잘 드러나는 매개가 축제다. 인류의 다양한 축제 속에서 색은 그 자체로 중심을 이뤘다.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가 인도의 홀리 축제다. 4대 힌두 축제 하나인 홀리는 색색의 가루를 풍선에 담아 서로에게 던지며 즐기는 페스티벌이다.

청자 사자 모양 손잡이 뚜껑 향로.
향에 부여된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탐색한 후각도 흥미롭다. 냄새는 단편적인 숨을 들이마시는 것에서 나아가 기억을 환기한다. 물론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한 매개체다. 서양의 향료 문화사에서 가장 중용한 기제가 기독교의 등장이다. 향 사용이 공인되면서 보편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1975년 발굴된 신안해저선에는 동아시아 향 문화를 알 수 있는 향로와 향료 등이 담겨 있었다. 중국의 향 문화가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파됐음을 보여준다.

촉각은 피부를 통해 느끼는 감각이다. 최근 아시아관광산업에서 주목할 분야가 피부마사지다. 저자는 “마사지의 기원과 역사를 따져보면 왕이나 귀족의 건강과 미용에서 출발해 종교 사원에 학교를 차려 마치 의사를 양성하듯 교육해온 배경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나무를 다듬어 매끈하게 만든 목조가구는 ‘시각적 촉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순백의 백자가 지닌 티 없이 맑은 표면은 촉각적 느낌을 자극한다.

미식과 연계되는 미각은 하나의 문화체계다. 혀가 감지하는 맛은 일부이며 후각, 시각, 경험과 기억이 어우러진다. 2018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식도락 관광이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지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특성이 어떻게 혼합돼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연주자는 물론 관객까지 흥을 느끼게 하는 우리나라 사물놀이.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감각은 다름아닌 청각이다. 청각만큼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주는 감각도 없다. 한국의 사물놀이 관람은 우리나라를 찾는 이들에게 인상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다. 꽹과리, 징, 장구, 북이 펼쳐내는 화음은 신명 그 자체다.

저자는 “우리는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그 세계 내에 존재한다”며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장소에 대한 만족감, 행복감, 기쁨의 순간도 몸과 감각에 의해 매개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서해문집·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